관련하여, 다음 링크의 글도 참고하십시오.

“결론의 비학문적 후서” 제2부 제1섹션 제1장에서 키르케고르(정확히는 클리마쿠스)는 “가발(Parykken)” 이야기를 통해 단순히 레싱(Lessing)의 문체를 비꼬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깊은 문제, 곧:

  • 역사적 진리(historisk Sandhed)
  • 객관적 동일성(objektiv Identitet)
  • 외적 형식(Form)
  • 그리고 영원한 진리(evige Sandhed)의 관계

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이것은 후서 전체의 핵심 주제인 “역사적 사실로부터 어떻게 영원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직접 연결됩니다.


1. 가발 이야기의 핵심 구조

그 비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났는데, 나중에 법정에서 그 강도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실제 인물을 안 것이 아니라:

  • 가발(Parykken)
  • 외적 형태(Form)
  • 겉모습(Indklædning)

만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 무고한 사람을 강도라고 지목하고
  • 실제 강도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클리마쿠스는 이것을 통해 말합니다. 사람들은 “진리 자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외적 형식만 기억하고 있다는 것.


2. 이것은 단순한 문체 문제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 레싱이 표현 방식을 자꾸 바꾸어서
  • 사람들이 혼란스럽다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핵심은 “객관적 동일성(objektiv Identitet)”을 찾으려는 태도 자체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 동일한 표현
  • 동일한 용어
  • 동일한 체계
  • 동일한 외적 형태

가 있으면 “같은 사상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표현이 달라지면 “다른 사상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클리마쿠스는 말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아는 방식이 아니라 “가발만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3. 이것은 후서의 핵심 문제와 연결된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철학이 아닙니다. 후서 전체의 중심 문제:

“역사적 진리(Historisk Sandhed)로부터 영원한 행복(Evige Salighed)을 세울 수 있는가?”

와 직접 연결됩니다. 왜냐하면 역사적 접근은 본질적으로:

  • 외적 사실
  • 객관적 정보
  • 형태(Form)
  • 증거(Bevis)

를 추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진리는:

  • 단순한 역사 정보가 아니라
  • 실존적 appropriation(자기화)
  • 주관적 열정(Subjektiv Lidenskab)

안에서만 참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가발 = 역사적 외형
강도 = 실존적 진리

인 셈입니다.


4. 그래서 레싱이 중요하다

클리마쿠스가 레싱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레싱이 일부러:

  • 동일한 표현을 반복하지 않고
  • 체계(system)를 만들지 않고
  • 독자가 단순히 따라 외우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즉 레싱은 “외적 형태(Form)”에 의존하는 독자를 계속 좌절시킵니다. 왜냐하면 종교적 진리는:

  • 반복 암기(Repetition)
  • 객관적 전달
  • 체계적 공식화

로 소유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레싱은 일종의 “소크라테스적 산파술(maieutik)” 역할을 합니다. 즉 그는:

  • 정보를 주지 않고
  • 독자를 자기 자신 앞으로 몰아갑니다.

5. 이것은 결국 “동시대성(Samtidighed)” 문제다

후반부에서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와의 관계 문제로 발전합니다. 사람들은:

  • 역사적 예수
  • 교리
  • 교회사
  • 성경 정보

를 “가발처럼” 붙잡습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기독교는:

“그리스도와 동시대적(samtidig)으로 관계 맺는 것”

입니다. 즉, 외적 역사 정보가 아니라 현재적 실존 관계입니다. 그래서 후서 전체는 “객관적 역사 탐구”에서 “실존적 관계”로 이동합니다.


6. 그래서 이 비유의 핵심은 이것이다

가발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진리는 외적 형식(Form) 속에 있지 않다.
진리는 실존적 appropriation 안에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 역사적 진리(historisk Sandhed)
  • 영원한 진리(evige Sandhed)

사이의 긴장입니다.

역사적 진리는:

  • 가발처럼 식별 가능하지만,

영원한 진리는:

  • 오직 주관성(Subjektivitet)
  • 내면성(Inderlighed)
  • 하나님 앞의 실존

안에서만 인식됩니다. 그래서 클리마쿠스는 “사람들은 가발만 기억한다”라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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