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련 글 읽기: 키르케고르 이후의 동일성과 차이
‘헤겔 이전의 동일성 철학’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 고대부터 근대까지 이어진 동일성의 일반적인 철학사
- 헤겔 직전 셸링이 전개한 좁은 의미의 동일철학(Identitätsphilosophie)
헤겔의 동일성과 차이를 이해하려면 이 두 흐름을 함께 봐야 한다.
1. 파르메니데스: 존재는 자기 자신과 동일하다
동일성 철학의 가장 오래된 출발점은 파르메니데스다.
그의 기본 명제는 다음과 같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는 자기 자신과 동일하며, 비존재와 섞일 수 없다. 참된 존재는 하나이고 불변하며 분할되지 않는다. 따라서 감각에 나타나는 생성과 변화, 운동과 다수성은 완전한 진리가 아니다.
이 입장에서 차이는 철학적으로 의심스러운 것이 된다. 어떤 것이 A에서 B로 변한다면, A는 더 이상 A가 아니게 된다. 그러면 비존재가 존재 속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비존재는 생각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 따라서 엄밀한 사유가 붙잡는 것은 변화하는 차이가 아니라 불변하는 동일성이다.
여기서 서양철학의 오래된 위계가 생겨난다.
- 동일성: 존재, 진리, 이성, 영원성
- 차이: 생성, 변화, 감각, 불완전성
들뢰즈가 비판하는 동일성 중심의 전통도 멀리 보면 여기에서 출발한다.
2. 플라톤: 변화 속에서도 동일하게 존재하는 형상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의 불변하는 존재와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하는 세계를 구분하면서 결합한다.
감각적 사물은 계속 변한다. 아름다운 사람이나 사물은 생겨나고 사라지지만, 아름다움 자체의 형상(ἰδέα)은 변하지 않는다. 여러 아름다운 것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불리는 것은 동일한 아름다움의 형상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앎은 차이 나는 개별자들 가운데서 동일한 형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많은 것들 → 하나의 동일한 형상
그러나 후기 대화편, 특히 『소피스트』에서는 단순한 동일성만으로는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가 나타난다. 플라톤은 ‘같음’과 ‘다름’을 존재의 중요한 종류로 인정한다. 어떤 것이 자기 자신과 같으려면 동시에 다른 것들과 달라야 한다.
즉 플라톤에게도 이미 동일성과 차이의 상호관계가 발견된다. 다만 전체적인 위계에서는 변하지 않는 형상의 동일성이 감각적 차이보다 우위에 있다.
3. 아리스토텔레스: 동일성은 실체의 지속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을 감각적 사물과 분리된 별도의 세계에 두지 않는다. 형상은 개별적 실체 안에 있다.
예를 들어 어린 소크라테스와 노년의 소크라테스는 여러 성질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동일한 소크라테스다. 변화하는 속성 아래에서 하나의 실체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서는 동일률이 사유의 기본 전제가 된다.
A는 A다.
여기에 모순율이 결합된다.
동일한 것이 동일한 관점과 동일한 시간에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닐 수는 없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가능태가 현실태가 되는 운동을 통해 동일한 실체가 변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씨앗과 나무는 현상적으로 다르지만, 하나의 형상적·목적론적 과정에 속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차이는 완전히 배제되지 않는다. 차이는 실체와 종의 질서 안에서 분류된다.
- 유적 동일성: 인간과 말은 모두 동물이다.
- 종적 차이: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 수적 동일성: 이 사람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동일한 개인이다.
이 체계에서 차이는 동일성과 동등한 근원이기보다, 공통된 유 안에서 종을 구별하는 원리다. 차이는 이미 정해진 존재 질서 안에서 이해된다.
4. 중세철학: 피조물의 차이는 신의 동일성에 근거한다
중세 기독교 철학에서는 동일성과 차이의 문제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옮겨간다.
신은 단순하고 불변하며 자기 자신과 완전히 동일한 존재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표현으로 신에게는 본질과 존재가 구분되지 않는다. 반면 피조물은 본질과 존재, 가능태와 현실태가 구분되는 복합적 존재다.
여기서 두 종류의 차이가 나타난다.
- 피조물들 사이의 유한한 차이
- 신과 피조물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
그러나 신과 피조물이 완전히 무관하다면 인간은 신에 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토마스는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를 사용한다. 인간이 선하고 신도 선하지만, 두 선함이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관한 의미도 아니다. 피조물의 선함은 신의 선함을 제한된 방식으로 반영한다.
이 점은 키르케고르와 비교할 만하다. 중세철학은 신과 인간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존재의 질서와 유비를 통해 양자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설명한다. 키르케고르는 그 관계가 인간 이성의 형이상학만으로 확보된다고 보지 않는다. 죄인이 된 인간과 신 사이의 절대적 차이(den absolute Forskellighed)는 신 자신의 계시를 통해서만 알려지고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5. 데카르트: 생각하는 자의 자기동일성
근대철학에 들어서면서 동일성의 중심이 존재에서 주체로 이동한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더라도 의심하고 생각하는 ‘나’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 없다고 본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여기서 확실성의 근거는 변하는 외부 세계가 아니라 사유하는 주체가 자신과 맺는 직접적 관계다. ‘나는 생각한다’는 행위 속에서 주체는 자기 자신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세계를 두 실체로 나눈다.
- 사유하는 실체
- 연장된 실체
따라서 주체와 객체, 정신과 물질의 차이가 날카로워진다. 근대 동일성 철학은 이 분열을 어떻게 다시 통일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물려받는다.
6. 스피노자: 모든 차이는 하나의 실체 안에 있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실체 이원론을 거부한다. 참된 실체는 오직 하나이며, 그것이 곧 신 또는 자연(Deus sive Natura)이다.
개별 사물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실체가 특정한 방식으로 나타난 양태다. 인간의 정신과 신체도 서로 다른 두 실체가 아니라 동일한 하나의 현실을 사유 속성과 연장 속성 아래에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스피노자에게 다양성과 차이는 실재하지만, 모두 하나의 동일한 실체의 표현이다.
하나의 실체 → 무한한 속성 → 다양한 양태
이 때문에 헤겔은 스피노자를 근대철학의 결정적 출발점으로 평가하면서도, 그의 실체가 개별성과 차이를 삼켜 버리는 ‘무차별적 동일성’에 머문다고 비판한다. 스피노자의 실체는 모든 것을 포함하지만, 그 차이들이 어떻게 실체 자체의 필연적 자기분화에서 나오는지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7. 라이프니츠: 완전히 동일한 두 개체는 없다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와 다른 방향으로 간다. 그는 세계가 무수히 많은 개별적 실체인 모나드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여기서 중요한 원리가 식별 불가능자의 동일성 원리다.
모든 성질이 완전히 똑같은 두 존재가 있다면, 그것들은 사실 둘이 아니라 하나다.
반대로 말하면 실제로 둘인 존재들은 반드시 어떤 차이를 가져야 한다. 겉보기에 똑같은 두 나뭇잎도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
라이프니츠는 차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지만, 모든 차이는 신이 선택한 최선의 세계와 예정조화 안에서 통일된다. 각각의 모나드는 독자적이지만 동일한 우주 전체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표현한다.
따라서 개체의 차이는 보존되지만, 궁극적으로 신적인 질서의 동일성에 의해 조화된다.
8. 칸트: 동일성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의 기능이다
칸트에게 동일성은 단순히 세계 속에서 발견되는 성질이 아니다. 경험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주체의 종합 기능이다.
나는 순간마다 서로 다른 감각을 경험한다. 이 다양한 표상들이 하나의 경험이 되려면 모두 다음 명제와 결합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칸트는 이를 초월론적 통각의 종합적 통일이라고 부른다. 경험 내용은 계속 달라져도, 그것들을 나의 표상으로 묶는 의식의 형식적 동일성이 있어야 한다.
다만 이 동일한 자아는 경험을 초월해 그 자체로 알려진 영혼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적 조건이다.
칸트에게 중요한 것은 동일성이 처음부터 주어진 실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양한 감각 자료를 종합함으로써 경험의 통일성이 성립한다. 이 종합 개념이 독일 관념론을 통해 헤겔의 변증법적 동일성으로 발전한다.
9. 피히테: 자아는 자신과 비아를 정립한다
피히테는 칸트의 형식적 자아를 능동적인 원리로 바꾼다.
자아는 자기 자신을 정립한다.
그러나 자아가 자신을 규정하려면 자신이 아닌 것, 즉 비아를 정립해야 한다. 한계와 저항이 전혀 없다면 자아도 자기 자신을 의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아의 동일성은 차이를 배제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아가 자신과 다른 것을 정립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는 활동 속에서 생겨난다.
이로써 동일성은 정적인 “A=A”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산출하는 운동이 된다. 헤겔의 변증법적 동일성에 매우 가까워진다. 다만 피히테는 이 운동을 주로 자아의 활동에서 출발시킨다.
10. 셸링: 주관과 객관은 절대자 안에서 동일하다
좁은 의미에서 ‘동일철학’은 주로 셸링의 철학을 가리킨다.
셸링이 해결하려 한 문제는 데카르트와 칸트 이후의 주관과 객관, 정신과 자연의 분열이다. 인간의 정신과 자연이 완전히 낯선 것이라면 정신이 어떻게 자연을 인식할 수 있는가?
셸링의 답은 양자가 더 근원적인 절대자의 두 표현이라는 것이다.
자연은 보이는 정신이고, 정신은 보이지 않는 자연이다.
주관과 객관, 관념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은 절대자 안에서 본래 동일하다. 양자는 절대적 동일성의 서로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이 동일성은 양쪽 가운데 하나가 다른 하나를 흡수하는 동일성이 아니다. 절대자 안에서는 주관과 객관의 대립 자체가 아직 성립하지 않는다. 셸링은 이를 무차별성(Indifferenz)의 관점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무차별성은 아무 차이도 없다는 일상적 의미라기보다, 주관과 객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근원적 동일성을 뜻한다.
11. 헤겔이 셸링의 동일철학을 비판한 이유
헤겔은 셸링이 주관과 객관의 분열을 극복하려 한 점은 받아들이지만, 양자를 곧바로 절대적 동일성이라고 선언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사용한 유명한 비유가 있다. 모든 차이가 사라진 절대자는 마치 “모든 소가 검게 보이는 밤”과 같다는 것이다.
헤겔의 질문은 이것이다.
절대자가 동일하다면, 현실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차이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절대자를 단순한 무차별적 동일성으로 놓으면 차이와 대립이 발생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헤겔은 절대자를 처음부터 완성된 정적 동일성으로 보지 않는다. 절대자는 자신을 차이화하고, 그 차이와 대립을 통과하여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운동이다.
즉 헤겔에게 참된 동일성은 다음과 같다.
차이 이전의 직접적 동일성
→ 자기 차이화
→ 대립과 모순
→ 차이를 포함하는 구체적 동일성
따라서 헤겔의 유명한 명제처럼, 참된 것은 실체일 뿐 아니라 주체이기도 하다. 절대자는 배후에 가만히 놓인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자신을 다르게 만들고 그 다름 속에서 자신을 회복하는 주체적 과정이다.
12. 키르케고르와 연결하면
키르케고르가 마주한 것은 단순히 “모든 것은 하나다”라는 오래된 동일성 철학만이 아니다. 그는 차이와 모순까지도 절대자의 자기동일성 속에 포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헤겔의 훨씬 강력한 체계를 마주했다.
키르케고르의 반론은 대략 다음과 같다.
차이를 포함하는 더 높은 동일성을 사유할 수 있다고 해서, 실존하는 인간이 실제로 그 차이를 극복한 것은 아니다.
특히 신과 죄인의 차이는 논리적 대립이 아니다. 그것은 죄, 결단, 회개, 믿음과 관련된 실존적 단절이다. 이를 절대정신의 자기차이화로 설명하면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충격과 역설이 체계의 한 계기로 바뀌어 버린다.
그래서 『철학의 부스러기』의 동등성·닮음(Lighed)은 셸링식 절대적 동일성도 아니고 헤겔식 차이를 포함하는 동일성도 아니다. 신과 인간을 하나의 공통된 형이상학적 원리로 환원하지 않으면서 만남을 설명하려는 개념이다.
역사적 흐름을 가장 압축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다.
- 파르메니데스: 참된 존재는 불변하는 동일성이다.
- 플라톤: 변화하는 다수는 동일한 형상에 참여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변화 속에서도 실체와 형상의 동일성이 지속된다.
- 중세철학: 피조물의 다양성은 동일하고 단순한 신에 근거한다.
- 데카르트: 확실성은 사유하는 주체의 자기동일성에서 출발한다.
- 스피노자: 모든 차이는 하나의 실체의 양태다.
- 라이프니츠: 개체들은 서로 다르지만 신적 조화 속에서 통일된다.
- 칸트: 주체의 종합적 동일성이 다양한 경험을 하나로 묶는다.
- 피히테: 자아는 비아와의 차이를 정립하며 자신을 산출한다.
- 셸링: 주관과 객관은 절대자 안에서 근원적으로 동일하다.
- 헤겔: 참된 동일성은 차이를 배제하지 않고 차이와 모순을 통과해 자신으로 돌아오는 동일성이다.
- 키르케고르: 신과 인간의 절대적 차이는 사유의 자기운동이 아니라 신의 낮아짐과 인간의 믿음을 통해서만 관계로 전환된다.
결국 헤겔 이전의 동일성 철학이 대체로 변화와 다양성의 배후에 있는 하나의 근거를 찾았다면, 헤겔은 동일성이 어떻게 스스로 차이를 낳고 회수하는지를 설명하려 했다. 키르케고르는 바로 그 회수의 가능성, 특히 실존과 신앙의 차원에서 모든 차이를 체계 안에 회수할 수 있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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