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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낭만주의 평가
“독일의 낭만주의는 이상적 공동체 속에서 아이러니를 설명했다”기보다는, 아이러니와 공동체의 구상이 초기 낭만주의의 동일한 철학적 기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프리드리히 슐레겔
프리드리히 슐레겔에게 낭만적 아이러니는 우선 개인이나 예술작품이 자신의 유한한 형식을 절대화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창조와 자기제한·자기파괴 사이를 오가는 운동입니다. 유한한 작품으로 무한을 지향하되, 자신이 무한을 완전히 담았다는 환상을 스스로 깨뜨리는 것이지요. 이는 이상적 공동체 자체에 관한 이론이라기보다 인식과 예술의 자기반성적 형식입니다.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다만 이 원리가 공동체론과 연결되기는 합니다.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각 개인이 고유성을 보존하면서도 서로를 보완하는 공동철학(Symphilosophie)·공동시작(Sympoesie)을 꿈꾸었습니다. 여기서 아이러니는 개인이 자기 관점을 절대화하지 않게 해 주므로, 다원적이고 열린 공동체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동체 안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기보다, 아이러니적 자기제한이 이상적인 낭만주의 공동체를 가능하게 한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낭만주의 미학 개관
작가별 차이
작가별로 보면 차이가 더 분명합니다.
- 티크: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배우·관객·무대가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고 연극 자체가 허구임을 폭로합니다. 여기서 공동체는 이상향이라기보다, 작품의 환상을 함께 만들면서 동시에 깨뜨리는 불안정한 극장 공동체입니다. 시민적 관객의 취향과 권위도 풍자됩니다.
- 호프만: 오히려 이상적 공동체의 성취보다 예술가의 내면적 이상과 속물적인 시민사회 현실 사이의 불일치를 강조합니다. 그의 아이러니는 무한을 향하는 정신이 육체·돈·직업·제도 같은 유한한 현실에 부딪히는 장면에서 생깁니다. 베를린 국립도서관의 호프만 해설도 이를 내면세계와 외부 현실의 불균형으로 설명합니다. E.T.A. Hoffmann Portal
그래서 가장 압축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슐레겔에게 아이러니는 열린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자기제한의 원리이고, 티크에게는 작품과 관객의 경계를 흔드는 극적 장치이며, 호프만에게는 이상적 내면과 현실 사회의 화해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형식입니다.
따라서 티크와 호프만이 “주로 이상적 공동체 속에서” 아이러니를 설명했다고 일반화하면, 특히 호프만의 소외와 분열의 측면을 놓치게 됩니다. 오히려 이들에게 아이러니는 완성된 이상 공동체의 표현이 아니라, 그러한 총체성과 화해가 아직 실현되지 않았거나 실현될 수 없음을 의식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공동체의 이상향을 소망했는가?
다만 티크와 호프만 모두가 하나의 구체적인 이상 공동체를 정치적으로 제시했다기보다, 현실의 분열을 넘어서는 공동체를 예술·우정·사랑·종교 속에서 소망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초기 독일 낭만주의 전반에는 다음과 같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 근대사회의 개인적 고립과 분업을 넘어서는 공동체
- 시와 철학, 예술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는 삶
- 개인들이 획일화되지 않으면서 서로를 보완하는 공동창작
- 자연·인간·종교가 다시 결합된 유기적 전체
슐레겔의 공동철학(Symphilosophie)과 공동시작(Sympoesie)이 대표적입니다. 그가 말한 이상적 “공화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처럼 고유성을 지니면서, 사랑과 소통을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습니다. 즉 개인이 공동체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개인들이 상대를 통해 자신을 확장하는 공동체입니다.
티크에게서는 이러한 소망이 주로 중세, 민담, 민요, 공동의 축제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납니다. 근대의 계산적·속물적 시민사회와 달리, 예술과 종교, 일상생활이 아직 분열되지 않은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티크는 그 세계를 순진하게 복원할 수 있다고 믿기보다는, 연극적 아이러니를 통해 이상향을 갈망하면서도 그 갈망 자체가 하나의 연출이고 환상임을 폭로합니다.
호프만에게도 예술가들의 우정이나 정신적 공동체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세라피온 형제들》의 이야기 모임이 대표적입니다.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작품을 비평하면서, 현실의 속물성에 맞서는 작은 예술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 전체의 이상적 모델이라기보다 현실 속에 잠정적으로 마련된 피난처에 가깝습니다. 언제든 현실의 돈·직업·권력·광기에 의해 깨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낭만주의 공동체의 이상은 대략 다음과 같은 역설을 갖습니다.
우리는 분열되지 않은 공동체를 소망하지만, 이미 근대적 자기의식을 얻은 이상 그 공동체로 순진하게 돌아갈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이러니가 필요해집니다. 낭만주의자는 이상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지만, 그것이 이미 실현되었다고 믿지도 않습니다. 이상을 제시하는 동시에 그 이상을 절대화하지 않고 스스로 깨뜨리는 것이 낭만적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이상향을 소망했는가?”에는 그렇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작품 속 아이러니는 그 이상향을 묘사하는 장식이 아니라, 이상향을 소망하면서도 그것의 현실적 불가능성과 위험을 의식하게 만드는 형식이라고 해야 합니다. 슐레겔에게는 비교적 적극적인 공동체의 전망이, 티크에게는 상실된 통일성에 대한 양가적 향수가, 호프만에게는 위태롭고 소규모인 예술가 공동체가 두드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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