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와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
사랑은 ‘나와 너’를 넘어서는가? 키르케고르의 《사랑의 실천》과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중심으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5 쇠렌 키르케고르의 《사랑의 실천》을 읽다 보면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익숙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사랑은 자기의 것을 구하지 않는다”는 장에서 그는 사랑 안에서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Read more
사랑은 ‘나와 너’를 넘어서는가? 키르케고르의 《사랑의 실천》과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중심으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5 쇠렌 키르케고르의 《사랑의 실천》을 읽다 보면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익숙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사랑은 자기의 것을 구하지 않는다”는 장에서 그는 사랑 안에서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Read more
한국 교회는 정말 쇠퇴했는가? 요즘 한국 교회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쇠퇴하고 있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교인 수 감소는 분명한 현실입니다. 젊은 세대의 교회 이탈, 이른바 ‘가나안 성도’의 증가, 지역 교회의 약화 등 우리는 여러 모습으로 그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묻습니다. “한국 Read more
[신학/철학] 레싱의 고랑을 건너는 두 가지 방법: 자유주의 신학과 키르케고르 관련 글 링크 참고: 우리는 흔히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큰 논쟁이 ‘유신론과 무신론’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19세기 유럽 사상계를 뒤흔든 가장 뜨거운 논쟁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라는 내부의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독일 계몽주의 사상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Read more
NB4, 1848년 NB4:1 1847년 12월 28일 NB4:2, Pap. VIII2 B143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기도 [여백에서: 주의. 사용하지 말 것. 왜냐하면 여기에서 기도는 너무 덕을 세우는 어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늘의 계신 아버지! 회중들은 아프고 슬퍼하는 모든 자들을 위해 주님께 너무 자주 중보기 도를 드립니다. 우리 중에 누구라도 치명적인 질병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Read more
NB30:87, Pap. XI1 A 269, n.d., 1854 의심스러운 것(Et Mistænkeligt)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성경(Den hellige Skrift)은 본래 자살(Selvmord)에 대해 어떤 명확한 금지도 담고 있지 않고, 중요한 성격 철학자(Charakteer-Philosopher)들 역시 그것을 허용하거나 심지어 찬양하기까지 하며, 또 내가 알기로 어떤 이교 종교(hedensk Religion)도 그것을 금하지 않는데—그런데 어째서 인간들 사이의 일상적인 거래와 생활(Handel Read more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가장 위험한 착각 ― 키르케고르의 산파술과 한국 교회 ― 키르케고르는 평생 이상한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누구보다 철저하게 설명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소크라테스적 전략이었습니다. 관련 일기는 다음을 참고하십시오. Journalen NB26(NB26:7, Pap. X4 A 553) 소크라테스는 당시 Read more
NB26:40, Pap. X4 A588 성령(Hellig-Aand)은 “위로자(Trøsteren, 보혜사)”이다―죽는 것(at afdøe)―거듭남(at gjenfødes) 왜 성령(Hellig-Aand)은 “위로자(Trøsteren, 보혜사)”라고 불리는가? 아주 단순하다. 만일 하나님과 관계 맺고 있다는 표적(Kjendet),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표적이, 모든 일이 내게 잘되는 것(Alt lykkes mig)이라면, 나는 나를 위로할 어떤 영(Aand)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관계 전체는 애초에 영(Aands)의 관계가 Read more
관련하여, 다음 링크의 글도 참고하십시오. 이 장에서 요하네스 클리마쿠스(Johannes Climacus)가 핵심적으로 말하려는 것은, 종교적인 것(Det Religieuse), 특히 기독교(Christendommen)의 진리는 객관적(objektiv) 체계나 세계사적(worldshistorisk) 진보 속에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단독자(Den Enkelte)의 주관성(Subjektivitet) 안에서만 실존적으로 관계 맺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레싱(Lessing)은 클리마쿠스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핵심 논지를 정리하면 Read more
Gotthold Ephraim Lessing 은 근대 신학적 자유주의(liberal theology)에 매우 큰 영향을 준 인물입니다. 다만 직접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자”라기보다, 자유주의 신학이 출발하게 되는 문제를 제기한 인물에 가깝습니다. 특히 레싱의 다음 문제의식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것이 이후 자유주의 신학 전체의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영향을 받은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Friedrich Schleiermacher 가장 중요한 인물입니다. Read more
“사변적 인간(Speculanten) vs 실제 인간(Mennesket)” Ⅰ. 문제 제기: 사변의 주체는 어디에 있는가 키르케고르가 비판하는 핵심은 단순히 사변(Speculationen) 자체가 아니라, 사변을 수행하는 주체의 소멸이다.그는 다음과 같은 역설적 상황을 지적한다: 즉,사유(Tanken)는 남아 있지만,사유하는 인간(Mennesket)은 사라진다. Ⅱ. 사변적 인간(Speculanten): 자기 은폐된 주체 사변적 인간(Speculanten)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자기 비가시성 그는 “나는 의심한다”고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