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철학] 레싱의 고랑을 건너는 두 가지 방법: 자유주의 신학과 키르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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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큰 논쟁이 ‘유신론과 무신론’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19세기 유럽 사상계를 뒤흔든 가장 뜨거운 논쟁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라는 내부의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독일 계몽주의 사상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이 제기한 일명 ‘레싱의 고랑(Lessing’s Ditch)’ 문제가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거대한 사상적 고랑을 마주한 두 천재의 선택이 정반대로 갈라졌다는 사실입니다. 한 부류는 현대 기독교의 물줄기를 바꾼 ‘자유주의 신학자들’이었고, 다른 한 명은 현대 실존주의의 선구자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였습니다.

이들은 레싱이라는 같은 거울을 보며 무엇을 꿈꾸었을까요?


1. 레싱의 고랑: 역사와 진리 사이의 거대한 간극

레싱은 그의 저서 《인류의 교육에 관하여》(1780) 등에서 다음과 같은 파격적인 명제를 던졌습니다.

“우연한 역사의 진리는 필연적인 이성의 진리를 증명할 수 없다.” [1]

이 말은 기독교의 기반을 뒤흔드는 폭탄과 같았습니다.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예수라는 인물이 기적을 행했고 부활했다는 사실은 어디까지나 ‘우연한 역사의 기록(사실)’일 뿐입니다. 레싱은 이러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오늘날 내가 가져야 할 ‘영원하고 필연적인 이성의 진리’를 보증해 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영원한 진리 사이에는 인간의 힘으로 메울 수 없는 깊은 ‘고랑(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2. 자유주의 신학자들: “이성과 도덕으로 고랑을 메우다”

19세기 알브레히트 리출, 아돌프 폰 하르낙 등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레싱의 이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계시에 집착하는 정통주의 교리를 과감히 버리기로 했습니다.

  • 그들의 해결책: 고랑을 건널 필요가 없다면, 차라리 고랑을 메워버리자!
  • 신앙의 재구성: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의 기적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더라도 기독교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교리가 아니라, 예수가 보여준 ‘보편적 사랑’, ‘이웃 봉사’, 그리고 ‘도덕적 사회 정의(하나님 나라)의 실현’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2]

그들에게 레싱은 종교를 미신과 독단으로부터 해방시켜 현대인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윤리적 종교’로 안내한 계몽주의의 영웅이었습니다.



3. 키르케고르: “이성을 버리고 ‘실존적 도약’을 감행하라”

반면,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그의 저서 《철학적 단편에 대한 결론으로서의 비학문적 후서》(1846)에서 레싱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환합니다. [3] 키르케고르 역시 역사적 증거나 객관적 연구(역사비평)로는 결코 신앙에 도달할 수 없다는 레싱의 지적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유주의자들처럼 종교를 안락한 도덕으로 치환하여 고랑을 대충 메워버리는 태도를 혐오했습니다.

  • 그들의 해결책: 고랑은 메울 수 없는 절대적 심연이다. 오직 ‘도약’만이 답이다!
  • 신앙의 재구성: 키르케고르에게 영원한 신이 시공간을 뚫고 유한한 인간(예수)이 되었다는 사건은 이성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절대적 역설(Paradox)’이었습니다. [4] 따라서 신앙이란 이성적인 납득이 아니라, 객관적인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걸고 눈을 감은 채 심연 속으로 뛰어내리는 ‘신앙의 도약(Leap of Faith)’이어야 했습니다.

키르케고르가 본 레싱은 진리를 다 알았다고 거드름 피우는 학자가 아니라, 진리라는 미지의 영역을 향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주체적으로 탐구했던 ‘실존적 사상가’였습니다.


4. 한눈에 보는 레싱을 향한 두 시선

두 진영은 레싱이라는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했으나, 도달한 목적지는 정반대였습니다.

구분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쇠렌 키르케고르
레싱의 고랑을 보는 눈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인간 이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절대적 심연
기독교의 핵심 가치보편적 윤리, 사회 정의, 문화적 진보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개별적 실존과 결단
진리의 성격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진리내가 그것을 위해 살고 죽을 수 있는 주관적 진리

에필로그: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레싱이 던진 고랑 앞에서 자유주의자들은 ‘상식과 이성의 다리’를 놓았고, 키르케고르는 ‘실존과 결단의 도약’을 감행했습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당신에게 종교와 신앙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따뜻한 도덕입니까? 아니면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나의 모든 것을 걸고 뛰어내리는 모험입니까? 레싱이 남긴 고랑은 지금도 우리에게 그 선택을 묻고 있습니다.


📝 각주(References)

  • [1] Gotthold Ephraim Lessing, Über die Beweis des Geistes und der Kraft (1877). 레싱은 이 글에서 역사적 사실(우연)과 이성적 진리(필연) 사이의 질적 차이를 선언했습니다.
  • [2] Adolf von Harnack, Das Wesen des Christentums (1900). 하르낙은 기독교의 본질을 교리가 아닌 복음의 도덕적 체계로 한정 지었습니다.
  • [3] Søren Kierkegaard, Afsluttende uvidenskabelig Efterskrift (1846). 키르케고르는 이 책의 사상적 위장자인 ‘요하네스 클리마쿠스’의 입을 빌려 레싱의 사상적 태도를 상찬합니다.
  • [4] 키르케고르는 이를 ‘절대적 역설(Absolute Paradox)’이라 불렀으며, 사변철학적 합리화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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