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4장 22절은 바울이 안전한 곳에서 고난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말이 아닙니다.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직후, 박해받는 신생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면서 한 목회적 권면입니다. 이 서사적 배경이 매우 중요합니다.
1. 첫 선교 여행의 귀환 장면
사도행전 13–14장은 바울과 바나바의 이른바 제1차 선교 여행을 다룹니다. 두 사람은 소아시아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지만, 가는 곳마다 상당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박해를 받고 그 지역에서 쫓겨납니다(행 13:50).
- 이고니온에서는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고 돌로 치려 하자 피신합니다(행 14:5–6).
- 루스드라에서는 바울이 실제로 돌에 맞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끌어냅니다(행 14:19).
- 바울은 살아난 뒤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행 14:20–21).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울과 바나바가 더베에서 비교적 안전한 귀환로를 택하지 않고, 자신들을 박해했던 도시들을 역순으로 다시 방문했다는 것입니다.
더베 → 루스드라 → 이고니온 → 비시디아 안디옥
바로 이 귀환 방문 중에 14장 22절의 말을 합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하고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하며, 우리가 많은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일반적인 인생고에 관한 격언이라기보다, 복음을 받아들인 까닭에 박해받는 신자들에게 주어진 권면입니다.
2. 헬라어 문장
헬라어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ἐπιστηρίζοντες τὰς ψυχὰς τῶν μαθητῶν, παρακαλοῦντες ἐμμένειν τῇ πίστει καὶ ὅτι διὰ πολλῶν θλίψεων δεῖ ἡμᾶς εἰσελθεῖν εἰς 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ῦ θεοῦ.
핵심 부분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많은 환난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
각 표현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 διὰ πολλῶν θλίψεων: 많은 환난들을 통하여
- δεῖ: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렇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
- ἡμᾶς: 우리가
- εἰσελθεῖν: 들어가다
- εἰς 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ῦ θεοῦ: 하나님의 나라에
특히 전치사 διά가 속격과 함께 쓰여 “~을 통하여”라는 뜻을 갖습니다. 따라서 환난은 단순히 목적지 옆에 놓인 우연한 장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실제로 통과해야 하는 현실로 표현됩니다.
3. “반드시”의 신학적 의미
δεῖ는 단순히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뜻보다 강합니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상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이 단어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됩니다. 대표적으로 누가복음 24장 26절에서 부활한 예수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여기서도 “들어가야 한다”에 δεῖ가 사용됩니다. 따라서 누가가 그리는 구조는 분명합니다.
그리스도: 고난 → 영광
그리스도의 제자들: 많은 환난 → 하나님의 나라
제자들의 길은 그리스도의 길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같은 십자가와 영광의 형태를 지닙니다.
4.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ἡμᾶς)는 일차적으로 바울과 바나바를 포함한 복음의 증인들을 가리키지만, 문맥상 그들만으로 제한하기 어렵습니다. 바울은 새 신자들에게 “너희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합니다. 사도와 신자 모두를 포함하는 공동체적 표현입니다.
즉,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셈입니다.
“여러분만 특별히 잘못되어 환난을 겪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목적은 신자들을 겁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굳세게 하는 데 있습니다. 22절 앞부분에는 두 개의 분사가 나옵니다.
- ἐπιστηρίζοντες: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하면서
- παρακαλοῦντες: 권면하고 격려하면서
“많은 환난을 통하여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은 절망의 선언이 아니라, 환난 때문에 믿음을 버리지 않게 하는 격려입니다.
5. 환난은 구원의 원인인가?
이 구절이 환난을 구원의 공로나 원인으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장은 “환난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가 아니라 “환난을 통하여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또한 바로 앞에서 바울은 신자들에게 “믿음에 머물라”(ἐμμένειν τῇ πίστει)고 권합니다. 따라서 구원의 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환난이 구원을 획득해 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사람은 환난을 통과하게 된다.
환난은 구원의 대가도 아니고 최종 목적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서 피할 수 없는 통과 과정입니다.
6. 키르케고르와의 관계
이 구절은 키르케고르의 “환난이 곧 길이다”라는 명제에 가장 가까운 성경적 근거입니다. 특히 “환난들을 통하여”(διὰ πολλῶν θλίψεων)라는 표현은 환난을 길의 외부에 있는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통로 안에 위치시킵니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작은 차이가 있습니다.
- 사도행전: 우리는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 키르케고르: 환난은 단지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환난 자체가 길이다.
따라서 키르케고르의 명제는 사도행전의 문장을 문자 그대로 반복한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이 가진 논리를 극대화한 해석입니다. 더구나 바울이 자신을 돌로 친 루스드라로 다시 돌아가 이 말을 했다는 사실은 그 해석에 실존적인 힘을 줍니다. 바울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귀환 여정으로 그것을 실제로 보여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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