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인물의 비교는 상당히 생산이라 생각되어 정리합니다. 얼마전 가족들과 함께 최근 화제가 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2026) 영화를 감상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2026년 7월 17일 개봉했고, 오디세우스의 오랜 귀향을 중심으로 한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영화화했습니다. 유니버설 공식 소개

오디세우스와 바울 모두 수많은 고비를 통과한 뒤 이전 장소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두 귀환의 방향과 목적은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오디세우스의 귀환: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오디세이》의 중심 개념은 노스토스(nostos), 곧 귀향입니다. 오디세우스의 목적지는 처음부터 이타카입니다. 그는 전쟁과 바다와 괴물과 유혹이라는 수많은 고비를 넘어 자기 집, 아내, 아들, 왕좌로 돌아갑니다.
그의 귀환은 잃어버린 정체성과 질서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집은 여전히 나의 집인가?
나는 다시 왕과 남편과 아버지가 될 수 있는가?
따라서 오디세우스의 길은 기본적으로 원환적입니다.
이타카 → 트로이 → 방랑과 고난 → 이타카
그는 낯선 세계를 통과하지만 결국 출발점인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귀환의 목적은 빼앗긴 자리를 되찾는 것입니다.

바울의 귀환: 타인을 굳세게 하러 돌아가기
바울도 더베에서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러나 이곳들은 그의 고향이 아닙니다. 더욱이 루스드라는 그가 환영받았던 집이 아니라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장소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귀환은 노스토스, 즉 자기 집으로의 귀환이라기보다 상처의 장소로의 귀환입니다.
그는 자기 자리를 되찾으러 돌아가지 않습니다. 자신이 세운 공동체를 소유하거나 지배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제자들을 굳세게 하고, 믿음에 머물도록 권하며, 장로들을 세운 뒤 그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두 귀환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잃어버린 집을 되찾으러 돌아가고,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자신이 상처받은 곳으로 돌아갑니다.
정복과 증언의 차이
오디세우스의 귀환에는 왕권 회복과 적의 제거가 포함됩니다. 그가 통과한 고난은 결국 자신의 이름과 집과 권리를 되찾는 영웅적 승리로 귀결됩니다. 그런 점에서 오디세우스의 귀환에는 여전히 ‘고지 탈환’의 성격이 있습니다.
반면 바울의 귀환은 고지 탈환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을 박해한 도시를 제압하지 않고, 자신의 상처를 공동체를 위한 증언으로 바꿉니다. 그가 되찾으려는 것은 자신의 권리가 아니라 제자들의 담대함입니다.
| 오디세우스 | 바울 |
|---|---|
| 고비를 넘어 집으로 돌아감 | 자신이 넘었던 고비로 다시 돌아감 |
| 자신의 자리와 이름을 회복함 |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굳세게 함 |
| 왕좌와 가정의 질서를 되찾음 | 공동체를 세우고 주님께 맡김 |
| 적을 제거함으로써 귀환을 완성함 | 적대 속에서도 다시 방문함으로써 길을 증언함 |
| 귀환의 종착점이 자기 집임 | 귀환한 장소도 다시 지나갈 길임 |
더욱 근본적인 차이
오디세우스에게 고비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방해물입니다. 고비가 사라질수록 목적지에 가까워집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가 해석한 바울의 삶에서는 고비가 단순한 방해물이 아닙니다. 환난 자체가 길이 됩니다. 바울은 환난을 뒤에 버리고 승리자로 귀환한 것이 아니라, 환난이 있었던 장소로 다시 들어가 그곳에도 여전히 길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차이를 가장 압축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오디세우스는 고비를 넘어 자기 집으로 돌아온 사람이고,
바울은 자신이 넘은 고비로 돌아가 그 고비를 타인의 길로 바꾼 사람입니다.
오디세우스의 귀환이 자기 정체성의 회복이라면, 바울의 귀환은 자기 환난의 공동체적 전환입니다. 바울은 개인적으로 겪은 고난을 “내가 살아남았다”는 영웅담으로 만들지 않고, “우리 모두가 많은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공동의 길로 바꿉니다.
바로 여기서 1인칭 단수의 영웅 서사와 1인칭 복수의 사도적 증언이 갈립니다.
오디세우스: “나는 돌아왔다.”
바울: “우리는 함께 이 길을 통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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