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나와 너’를 넘어서는가?
키르케고르의 《사랑의 실천》과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중심으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 고린도전서 13:5
- 관련 링크: “내 것”이 사라질 때 “너의 것”도 사라진다
쇠렌 키르케고르의 《사랑의 실천》을 읽다 보면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익숙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사랑은 자기의 것을 구하지 않는다”는 장에서 그는 사랑 안에서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사랑이 완전해질수록 나의 것과 너의 것의 차이는 더 깊이 폐지되고,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갖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됩니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마르틴 부버입니다.
부버의 ‘나와 너’
부버의 《나와 너》는 20세기 관계철학의 고전입니다. 그는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를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나–그것(Ich–Es)”이고, 다른 하나는 “나–너(Ich–Du)”입니다. “나–그것”의 관계는 대상을 분석하고 사용하며 소유하는 관계입니다. 반대로 “나–너”의 관계는 살아 있는 만남이며 상호적인 현존의 관계입니다. 사랑은 여기서 상대를 대상이 아니라 “너”로 만나는 사건이 됩니다.¹
이 점에서 부버와 키르케고르는 놀랍도록 가깝습니다. 둘 다 타인을 대상화하는 사랑을 거부합니다. 사랑은 상대를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만나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키르케고르의 ‘나와 너’
부버에게 사랑의 절정은 “나와 너”의 관계가 살아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묻습니다. 내가 상대를 “너”라고 부르는 바로 그 순간에도, 혹시 나는 그를 여전히 “나의 너”로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은 매우 급진적입니다.
“너”라는 말은 가장 친밀한 호칭이지만 동시에 쉽게 소유의 언어가 되기도 합니다. “나의 사람”, “나의 친구”, “나의 연인”이라는 말 속에는 애정과 함께 소유의 그림자가 숨어 있습니다. 사랑이 강렬할수록 오히려 상대를 붙들고자 하는 욕망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키르케고르는 사랑과 사랑에 빠짐(Forelskelse)을 구분합니다.
사랑과 사랑의 빠짐
사랑에 빠짐은 인간적으로 아름답고 강렬하지만, 여전히 “나는 너를 원한다”는 구조를 포함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사랑(Kjerlighed)은 “나는 너를 가지려 하지 않는다”는 자기부인에서 출발합니다. 사랑은 상대를 내 것으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속한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²
그래서 키르케고르에게 사랑은 “나와 너”의 직접적인 관계라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입니다.
그의 사랑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나 → 하나님 → 너
나는 너를 직접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사랑을 받아, 그 사랑이 나를 지나 너에게 흘러가도록 내어주는 존재입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통로입니다. 사랑은 움켜쥠이 아니라 흘러보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키르케고르에게 사랑은 “나–너”조차 넘어섭니다.
그에게 사랑의 완성은 “너를 향한 강렬한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것과 네 것의 차이가 사라지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내 것으로 갖고 있지 않다.”
만물의 너의 것
이 역설은 사도 바울의 선언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³
바울에게 만물이 우리의 것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 소유를 포기할 때 오히려 모든 것이 선물이 됩니다. 키르케고르 역시 동일한 역설 속에서 사랑을 이해합니다. 자기 것을 붙들지 않는 자만이 진정으로 모든 것을 받습니다.
결국 부버가 “만남의 철학”이라면, 키르케고르는 “자기비움의 사랑의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버에게 사랑은 “너”를 만나는 일이고, 키르케고르에게 사랑은 “너를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참된 사랑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너를 붙드는 순간이 아니라,
내가 너를 붙들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하나님 안에서 끝까지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그 자리에서 말입니다.
각주
- Martin Buber, Ich und Du (Leipzig: Insel Verlag, 1923), 3–18. 부버는 인간 존재의 근본 구조를 “나–그것(Ich–Es)”과 “나–너(Ich–Du)”의 이중 관계로 설명한다.
- Søren Kierkegaard, Kjerlighedens Gjerninger (1847), især Anden Følge, IV. 키르케고르는 사랑이 “자기의 것을 구하지 않는다”는 고린도전서 13장 5절을 중심으로 기독교적 사랑의 자기부인 구조를 전개한다.
- 고린도전서 3:21–23.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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