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4, 1848년
NB4:1
1847년 12월 28일
NB4:2, Pap. VIII2 B143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기도
[여백에서: 주의. 사용하지 말 것. 왜냐하면 여기에서 기도는 너무 덕을 세우는 어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1]
하늘의 계신 아버지!
회중들은 아프고 슬퍼하는 모든 자들을 위해 주님께 너무 자주 중보기 도를 드립니다.2 우리 중에 누구라도 치명적인 질병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누 워 있다면, 회중은 종종 특별한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우리 각자가 어떤 질 병이 죽음에 이르는 병인지 올바르게 깨닫게 하소서. 이런 식으로 우리 모 두가 어떻게 아픈지를 깨닫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님은 이 병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 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병을 갖고 있으나 주님은 이런 식으로 아프다는 것을 깨닫는 자들에게서만 이 병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이 병 가운데 있는 우리가 주님을 의지함으로 치유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성령님이신 하나님이여,
우리가 정직하게 치유되기를 원할 때, 성령님 은 우리를 도우러 오십니다. 성령님이여, 의사의 도움을 거절하며 파멸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의사에게 남을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하소서. 이 병으 로부터 구원하소서. 의사와 함께 하는 것이 이 병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사와 함께 있을 때에만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 다!
-JP III 3423 (Pap. VIII2 B 143) n.d., 1848
- 키르케고르(SK)는 ‘건덕적인 것(det opbyggelige)’과 ‘건덕(opbyggelse)’을 구별한다. 그는 1843–44년에 출간한 여러 건덕적 강화(opbyggelige Taler) 에서는 ‘건덕적인 것(det opbyggelige)’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건덕(opbyggelse)’ 은 그것보다 더 높은 범주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1849년 7월 키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 건덕과 각성을 위한 기독교적 심리학적 전개》(Sygdommen til Døden. En christelig psychologisk Udvikling til Opbyggelse og Opvækkelse)를 출간했을 때, 그는 자신의 일기 NB11에 이렇게 기록한다.
“이제 《죽음에 이르는 병》이 출간된다. 그러나 가명으로, 나는 발행인으로서 출간한다. 여기에는 ‘건덕을 위하여(til Opbyggelse)’라고 적혀 있다. 이것은 나의 범주, 곧 시인의 범주(digter Kategorien)인 ‘건덕적인 것(opbyggelig)’보다 더 높은 것이다.”(Pap. X 1 A 510, p.329)
이 구분은 키르케고르에게 꽤 중요하다. 간단히 말하면, 건덕적인 것 (det opbyggelige / opbyggelig)은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위로하고, 마음을 고양시키는 말로 문학적·설교적 성격이 강하다.
건덕(opbyggelse)은 인간 존재를 하나님 앞에서 실제로 세우는 것으로, 실존(existens)을 변화시키는 보다 깊은 영적 사건이다. 그래서 NB4 기도문 위에 붙은“아마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는 거의 지나치게 건덕적이다.”라는 메모는,“이 기도가 너무 감동적이고 설교적(opbyggelig)으로 들려서, 자신이 말하려는 더 깊은 의미의 건덕(opbyggelse)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는 키르케고르 자신의 자기평가로 읽을 수 있다.
즉 그는 단순히 아름다운 기도문을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독자를 실제로 하나님 앞에 세우는 실존적 건덕(opbyggelse)을 추구했던 것이다. ↩︎ - 이는 주일과 모든 절기 예배의 대예배(højmesse)에서 설교 후 드리도록 정해진 교회 기도(kirkebøn) 를 가리킨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도가 나온다.
“모든 과부를 돌보아 주소서! 모든 고아의 보호자가 되어 주소서! 버림받은 자를 결코 홀로 두지 마소서! 병든 자의 침상 곁에 함께하소서! 믿음 안에서 죽어가는 이들의 마지막 탄식을 받아 주시고, 그 영혼이 영원한 기쁨에 참여하게 하소서!”
이는 《덴마크 예배서(Forordnet Alter-Bog for Danmark)》(1830[1688]) 221쪽에 실려 있다. 또한 이는 주일과 절기의 새벽예배(froprædiken) 및 저녁기도회(aftensang) 에서 설교 후 드리는 정해진 기도와도 연결된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기를! 하나님께서 슬픔 가운데 있는 모든 자를 위로하시기를—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덴마크 예배서》, 228쪽)
이 주석의 핵심은, 키르케고르가 NB4의 기도문에서 갑자기 즉흥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덴마크 국교회의 공적 예배 전통 속에 있는 중보기도의 언어를 그대로 끌어와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는 그 전례적 기도를 자신의 실존적 방식으로 뒤집는다. 교회는 보통 육체적으로 병든 자(de syge)와 슬픔 가운데 있는 자(de sorrigfulde)를 위해 기도한다.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묻는다.
“참된 병(Sygdommen)은 무엇인가?”
“죽음에 이르는 병(Sygdommen til Døden)은 무엇인가?”
즉 공동체가 병자를 위해 드리는 외적 기도를, 그는 영혼의 절망(Fortvivlelse)을 위한 내면의 기도로 심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NB4의 기도는 전례(kirkebøn)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의 실존적 기도로 옮겨간다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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