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21:35
내 학위논문의 한 대목1
나는 헤겔과 온갖 근대 사상에 영향을 받은 데다2 위대한 것을 제대로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내 학위논문의 어느 대목에서 소크라테스가 전체성(Totaliteten)을 바라보는 안목은 없고 개별자들(de Enkelte)을 단지 수적으로만 바라보았다는 점3을 그의 불완전성으로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헤겔주의에 빠진 이 어리석은 자여! 바로 그것이야말로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위대한 윤리적 사상가였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각주
- 내 학위논문(min Disputats): 키르케고르가 1841년 9월 29일 철학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심사받은 《아이러니의 개념—소크라테스를 지속적으로 참조하여》(Om Begrebet Ironi med stadigt Hensyn til Socrates)를 가리킨다. SKS 1, 69-278에 수록되어 있다. ↩︎
- 내가 헤겔의 영향을 받았던(Paavirket som jeg var af Hegel): 《아이러니의 개념》 제1부의 부록 〈소크라테스에 대한 헤겔의 이해〉를 보라. SKS 1, 263-278에 수록되어 있다.
— 헤겔(Hegel):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 독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1818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베를린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키르케고르는 자신의 장서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전집》(Georg Wilhelm Friedrich Hegel’s Werke. Vollständige Ausgabe) 제1-18권(베를린, 1832-1845) 중 여러 권을 소장하고 있었다. 이하 《헤겔 전집》으로 약칭한다. 장서목록 549-565 및 1384-1386을 참조하라. ↩︎ - 내 학위논문에서……소크라테스가……개별자들을 단지 수적으로만 바라보았다는 것: 부록 〈소크라테스에 대한 헤겔의 이해〉를 가리킨다. 여기서 키르케고르는 헤겔의 《철학사 강의》(Vorlesungen über die Geschichte der Philosophie, K. L. 미헬레트 편, 제1-3권, 베를린, 1833-1836, 장서목록 557-559)를 참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인용된 부분은 제2권(1833), 《헤겔 전집》 제14권 92쪽(《희년판》 제18권 92쪽)에 해당한다.
“보편적인 것(Det Universelle)에 대한 이러한 제한이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확고한 것이 되고, 보편적인 것이 그 규정성 안에서 인식되는 것은 오직 현실의 전체 체계(Total-System)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에게는 이것이 없다. 그는 국가를 부정했지만, 더 높은 형태의 국가로 다시 돌아오지는 못했다. 그 더 높은 형태의 국가란 그가 부정적으로 요구했던 무한성이 긍정되는[확증되는] 국가다.”
SKS 1, 275,30-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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