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 III A 7, P264:7
소크라테스1가 긍정적인 데 이르지 못하고 단지 부정적인 데 머문 것은, 오직 그가 자신의 원리를 우연적이고 자의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이다.2 질문하는 기술은 대답하는 기술의 변증법적 측면일 뿐이다. “어리석은 사람 한 명이 현자 일곱 명도 대답하지 못할 만큼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다”3고 말할 때, 현자들이 대답할 수 없는 까닭은 상대방이 제대로 질문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단지 아무개가 대답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기술을 논쟁적으로만 사용했다.
이와 관련하여, 소크라테스가 불멸과 저세상에서 호메로스 등과 교제할 가능성에 관해 말하면서 그들에게도 질문하고 싶다고 한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밝히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문제가 될 수 있다.4 그가 그렇게 하려는 목적은 그들 역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모든 높은 것(ὕψωμα)5을 무지의 단순하고(einfache) 공허한 무한성 속으로 끌어내리려는 것이었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여기서는 긍정적인 것이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곧 무언가를 알아내려는 관심에서 제기된 질문이었다는 것이다.
근대 철학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하기 위해 모든 전제(Forudsætning)를 제거하는 일6에 그토록 분주하다.7 소크라테스도 자기 방식으로 똑같은 일을 했다. 다만 그는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끝내기 위해 그렇게 했다.
1840년 7월 10일.
주석
- 소크라테스(Socrates 또는 Sokrates, 기원전 약 470-399): 그리스 철학자. 동시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산파술(majeutiske metode, jordemoderkunst)을 사용하여 이미 지식을 잉태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것을 낳도록 돕고, 그들이 지닌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했다. 이 과정은 언제나 대화의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과 다른 신들을 믿고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로 고발되었다. 아테네의 시민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독배를 침착하게 마시고 처형되었다.
소크라테스 자신은 어떠한 저술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성품과 대화술 및 가르침은 주로 동시대의 세 저술가에 의해 묘사되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희극 《구름》에서,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에 관한 회고록인 《소크라테스 회상록》(Memorabilia)을 포함한 네 편의 ‘소크라테스적 저술’에서, 플라톤(234,32 참조)은 자신의 대화편들에서 그를 묘사했다. ↩︎ - 자신의 원리(sit eget Princip):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가 대화할 때 자주 자신의 무지를 내세운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가령 《소크라테스의 변론》 21a-23b에서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의 신탁이 자신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선언한 까닭을 설명한다. 자신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소크라테스와 달리, 많은 사람은 자신이 무언가를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조금 뒤인 33c와 28e에서도 소크라테스는 신탁과 꿈 등을 통하여, 자신과 지혜롭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지혜롭지 않은 사람들을 검토하라는 명령을 신에게서 받았다고 말한다. 《플라톤 저작집》(234,32 참조) 제1권, 265-293쪽, 특히 269-272쪽, 284쪽 및 278쪽을 참조하라. ↩︎ - 어리석은 사람 한 명이 현자 일곱 명도 대답하지 못할 만큼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다(Én Nar kan spørge mere, end syv Vise kan svare på): 여러 형태로 전해지는 속담이다. 예를 들어 “바보 한 명이 현자 일곱 명도 대답하지 못할 만큼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다”라는 형태가 N. F. S. 그룬트비의 《덴마크 속담과 관용구》(코펜하겐, 1845년, 장서목록 1549) 97쪽에 2542번으로 수록되어 있다. 다른 형태들은 E. 마우의 《덴마크 속담 대전》 제1-2권(코펜하겐, 1879년) 가운데 제2권 350쪽에 9528번으로 수록되어 있다. ↩︎
- 소크라테스가 불멸에 관해 말하면서……그들에게 질문하고 싶다고 한 말: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 41a-c에서 소크라테스가 유죄판결과 사형선고를 받은 뒤에 한 다음의 말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죽음이 이곳에서 다른 세계로 떠나는 여행과 같은 것이고, 사람들이 말하듯이 죽은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해 보라. 하데스에 도착하여 이곳의 소위 재판관들에게서 벗어나, 그곳에서 진정한 재판관들을 만나게 된다면 어떻겠는가? 그곳에서는 미노스와 라다만튀스, 아이아코스와 트립톨레모스, 그리고 살아 있을 때 정의를 지켰던 다른 모든 반신이 재판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 여행은 결코 나쁜 여행이 아닐 것이다. 오르페우스와 무사이오스,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를 만날 수 있다면 그 대가로 무엇인들 내놓지 않겠는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기꺼이 몇 번이고 죽을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 팔라메데스와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 그리고 옛날에 부당한 판결을 당한 다른 모든 사람을 만나 그들의 운명과 나의 운명을 비교해 보는 것도 내게는 특별한 기쁨이 될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그것은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했던 것처럼 그곳의 사람들을 검토하고 탐구하면서, 그들 가운데 누가 지혜로운지, 또 누가 지혜롭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트로이를 향한 대원정을 이끈 지휘관이나 오디세우스나 시시포스, 또는 그 밖의 수많은 남녀를 검토할 기회를 얻는다면 그 대가로 무엇인들 내놓지 않겠는가? 그들과 함께 지내며 대화하고 그들을 검토한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일 것이다!
적어도 그곳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를 죽이는 방식으로 보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하데스의 주민들은 불멸한다는 점에서도 이곳의 우리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플라톤 저작집》(234,32 참조) 제1권, 292쪽 이하. ↩︎ - ὕψωμα(hýpsōma): 그리스어로 ‘높이’, ‘높은 것’, ‘고양됨’, ‘교만’을 뜻한다. 이 단어는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나오며,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라고 말한다(《신약성경》 1819년판). ↩︎
- 철학자들의 무전제성(Philosophernes Forudsætningsløshed): 철학이 아무런 전제 없이 시작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당시의 논쟁을 가리킨다.
G. W. F. 헤겔은 《논리학》(Wissenschaft der Logik, 233,8 참조) 제1권 〈존재론〉(Die Lehre vom Seyn)의 “학문은 무엇으로 시작해야 하는가?”(Womit muß der Anfang der Wissenschaft gemacht werden?) 장에서 사변적 사유가 아무런 전제 없이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헤겔 전집》(233,4 참조) 제3권, 59-74쪽(《희년판》 제4권, 69-84쪽) 가운데 63쪽(《희년판》 73쪽)에서 그는 학문의 시작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문의 시작은 아무것도 전제해서는 안 되고, 어떤 것에 의해서도 매개되거나 어떤 근거를 가져서도 안 된다. 오히려 시작 자체가 학문 전체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시작은 절대적으로 하나의 직접적인 것이어야 하며, 더 정확히 말하면 직접적인 것 자체여야 한다. 시작은 다른 것에 대하여 어떠한 규정도 가질 수 없듯이, 자기 안에도 어떠한 규정이나 내용도 포함할 수 없다. 그러한 것은 서로 다른 것들의 구별과 상호관계이며, 따라서 매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작은 순수 존재이다.”
덴마크에서는 이러한 헤겔의 원리를 둘러싸고 철학의 시작에 관한 광범위한 논쟁이 벌어졌다. J. L. 하이베르그가 W. H. 로테의 《삼위일체와 화해의 교리—하나의 사변적 시도》(코펜하겐, 1836)를 논평한 글을 보라. 하이베르그는 《페르세우스》 제1호(236,18 참조) 36쪽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체계가 실제로 자신이 약속한 것, 곧 무전제적 시작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에 반대하여 F. C. 시베른은 J. L. 하이베르그의 《페르세우스》 제1호를 논평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 글은 ‘한 협회’가 발행한 《문학 월간지》 제19권(코펜하겐, 1838) 315쪽 이하에 실려 있다.
“그런데 철학이 아무런 전제 없이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하나의 대단히 큰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철학의 본질과 가능성, 그리고 철학의 전체적인 진행과 방법에 관한 논의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이 전제를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논의는 이미 우리를 철학 자체의 한가운데로 이끌어 갈 것이다.”
시베른은 이어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철학이 헤겔이 주장하듯이 직접적인 최초의 것에서 시작할 수 없다면, 이는 헤겔의 철학에 관한 최초의 개념에 제기되는 중대한 반론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기하는 이 논쟁은 헤겔의 시작이 효력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334쪽 이하도 참조하라.
반면 J. L. 하이베르그는 〈논리적 체계〉에서 논리학이 무전제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고수한다. 《페르세우스》 제2호(236,18 참조) 제4절 11쪽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서 우리가 절대적 시작에 도달하기 위해 나아가는 길을 설명적 또는 외재적 서론이라고 불러도 좋다. 다만 그것이 체계 자체의 시작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 서론은 절대적 시작을 미리 규정하는 어떠한 전제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론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무전제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론은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대신 오히려 모든 것을 버린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전제되지 않은 지점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 목표에 도달하고 나면, 어떤 길을 통해 그곳에 이르렀는지는 전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무전제적인 것은 어떤 경우에도 참된 시작이며, 여러 전제를 거쳐 그곳에 도달했다고 해서 그것의 무전제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A. P. 아들러는 《고립된 주관성》(Den isolerede Subjectivitet, 233,4 참조) 4-6쪽에서 “철학의 전제에 관한” 긴 주석을 덧붙인다. 그는 필연적으로 스스로를 강제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철학의 전제를 동시에 철학의 무전제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5쪽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철학이 찾는 것은 오직 “하나의 확고한 출발점, 곧 너무나 미미하고 추상적이어서 무라고 선언해야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필연적이어서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하나의 전제”이다. ↩︎ - 근대 철학이……모든 전제를 제거하여……무에서 시작하는 것: 키르케고르는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의 문서에서》(1838)에서 “무에서 시작하려는 헤겔의 위대한 시도”를 언급한다(SKS 1, 17,15).
G. W. F. 헤겔은 《논리학》(Wissenschaft der Logik, 233,8 참조) 서론에서 논리학이 ‘순수 존재’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이 순수 존재는 ‘무’와 동일하다. 《논리학》 제1권 〈존재론〉(Die Lehre vom Seyn)에 수록된 “학문은 무엇으로 시작해야 하는가?”(Womit muß der Anfang der Wissenschaft gemacht werden?) 장을 참조하라. 《헤겔 전집》(233,4 참조) 제3권, 59-74쪽(《희년판》 제4권, 69-84쪽)이다. 여기에서 헤겔은 68쪽(《희년판》 78쪽)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작은 순수한 무가 아니라, 그로부터 어떤 것이 나와야 하는 무이다. 따라서 존재 역시 이미 시작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시작은 존재와 무, 이 둘을 모두 포함하며 존재와 무의 통일이다. 다시 말해 시작은 동시에 존재인 비존재이며, 동시에 비존재인 존재이다.”
덴마크의 헤겔주의자 J. L. 하이베르그는 철학이 ‘무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상을 일종의 표어와 같은 원리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그가 편집한 잡지 《페르세우스—사변적 이념을 위한 저널》(Perseus, Journal for den speculative Idee) 제1호(1837년 6월)와 제2호(1838년 8월), 장서목록 569(이하 《페르세우스》로 약칭)에 실린 그의 논문 〈논리적 체계〉(Det logiske System) 제1-8절을 참조하라. 해당 논문은 제2호 1-45쪽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그의 《철학의 철학 개요》(Grundtræk til Philosophiens Philosophie, 233,8 참조) 11쪽의 제26-27절도 참조하라.
— 모든 전제를 제거하여: 237,15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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