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 《사랑의 실천》 작품 해설

―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명령’이며, 존재를 형성하는 실천이다

  • Works of Love: Some Christian Deliberations in the Form of Discourses
  • Kjerlighedens Gjerninger. Nogle christelige Overveielser i Talers Form
  • 1847
  • KW16, SKS9, SV9
사랑의 실천 2부 첫 페이지

초판 《사랑의 실천》(KG, 「제2부」)의 일반적인 페이지 펼침 형식. 실제 크기 그대로이다. 161쪽에는 소제목의 한 예가 보이는데, “죽은 이를 기억하는 사랑의 행위(실천)”이다. 그 아래에는 세 줄이 자간을 넓히는 방식으로 강조되어 있으며, “가장 무사심적인(uegennyttigste)”이라는 단어는 추가로 굵은 글씨로도 표시되어 있다.

현재 한국어로 번역된 책은 다음과 같다. 《사랑의 실천 I》로, 키르케고르의 작품 《사랑의 실천》 1부를 번역한 것이다.


《사랑의 실천》은 성찰이다!

《사랑의 실천》은 「마음의 청결은 한 가지를 품는 것이다」(≪다양한 정신의 건덕적 강화≫ 참조)와 일정한 친연성을 지닌다. 두 작품 모두 신학적 주제보다 윤리적 측면을 더 강조한다.

이 책의 부제에는 “성찰(deliberations)”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H. Hong이 지적하듯이, 키르케고르는 “성찰(deliberation)”와 “건덕적 강화(upbuilding discourse)”를 구별하였다(후자의 경우 ≪열여덟 편의 건덕적 강화≫ 참조).

“성찰”는 행동을 촉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사람을 깨우기 위한 것이다. 즉, 그것은 일종의 “등에(쇠파리, gadfly)”이다. 반면 “건덕적 강화”는 설득하고, 감동시키며,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서문에서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용어와 자신의 목적을 설명한다.


많은 성찰의 열매인 이 기독교적 성찰(christelige Overveielser)은 느리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누군가 성급하게, 호기심 가득 찬 독해 로, 이 성찰들을 스스로 더욱 어렵게 한다면, 이해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입 니다. 먼저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 성찰하고 있는 단독자가 읽기를 선택한다 면, 그리하여 이 어려움과 쉬움을 신중하게 저울에 올려놓을 때, 이것이 서로 적절하게 관계하는지를 성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본질적으로 기독교 적인 것이 어려운 것을 더 크게 하거나 쉬운 것을 더 크게 하여 무게를 잘못 다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들은 기독교적 성찰입니다. 따라서 사랑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Gjerninger)에 대한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에 대한 것이므로, 여기에서 이 모든 실천이 다 열거되고 서 술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 오! 그 풍요로움 전체에서 본질적으로 무궁무진한 것은 가장 작은 실천에서 도 본질적으로 형언할 수 없지요. 그 실천은 본질적으로 모든 곳에 존재하고 본질적으로 형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사랑의 실천》, 서문에서…


키르케고르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사랑의 실천을 강조한다.

첫째, 사랑은 서술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는 기독교인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사랑의 구체적 표현에 관심을 둔다.

그는 루터와 마찬가지로 행위가 구원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는 데 동의하지만, 사랑에 근거한 행위는 기독교인의 삶에서 필연적으로 흘러나오는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사랑의 실천》에서 키르케고르는 영적 사랑의 여러 성서적 측면들을, 에로스적 사랑과 우정과의 관계 속에서 체계적으로 다룬다. 이러한 철저함은 청교도 저작들을 연상시키는데, 그들은 하나의 주제를 가능한 모든 각도에서 검토하여 철저히 다루려 했다. 그는 이 책을 “작은 책”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300쪽이 넘는 분량을 가진 대작이다.


왜 《사랑의 실천》이 중요한가

사랑의 실천은 키르케고르의 저작 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기독교적 사랑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윤리서가 아닙니다.

사랑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어떻게 존재를 형성하는지를 보여주는 책

특히 이 작품은 그의 간접적 저작 이후, 보다 “직접적”이고 기독교적인 목소리로 전환되는 시기에 쓰였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명령”이다

키르케고르의 출발점은 매우 급진적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 명령은 선택이 아닙니다.

  • 좋아하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 즉,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결단이며, 명령에 대한 순종입니다. 이러한 키르케고르의 관점은 책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이나 로마 및 이교도를 살펴 보십시오. 사랑을 명령한 책이 있을까요? 혹은 사랑을 명령하고 있는 어떤 이교도 사상이 있을까요?

그러나 믿음의 기원(Troens Oprindelighed)은 기독교 기원과 바로 연결됩니다. 여기서 이교도와 오류 그리고 그 특징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기독교인의 표식은 기독교 자체에 들어 있습니다. 잠시 가정해 봅시다. 잠시 기독교를 잊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시에서 읽은 것, 혹은 이것 저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당신에게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던 것들이 있었던가요? “그대 사랑하라(Du skal elske).” -《사랑의 실천》, 87쪽.


사랑의 대상: “이웃”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이웃”입니다.

이웃이란 누구인가

이웃은:

  •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
  • 심지어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까지 포함

👉 따라서 이웃 사랑은 차이를 제거하는 사랑이 아니라 차이를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편애의 사랑 VS 이웃 사랑

키르케고르는 두 가지 사랑을 구별합니다. 편애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랑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사랑은 편애의 사랑입니다. 예들 들어, 우정이나 에로스의 사랑과 같은 것 역시 편애의 사랑에 해당됩니다.

첫째, 세속적 사랑(편애의 사랑)은 감정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일종의 매력, 취향, 조건을 따집니다. 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좋아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 기독교적 사랑(이웃 사랑)은 명령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조건이 없습니다. 변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됩니다. 따라서 “사랑하라고 명령 받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숨겨진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사랑의 본질을 이렇게 말합니다:

참된 사랑은 드러나지 않는다

  • 과시하지 않음
  • 인정받지 않음
  • 보상을 기대하지 않음

👉 이것은 당신이 이전에 탐구한 “익명성과 선”의 구조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0 Comments

답글 남기기

Avatar placeholder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