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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본 그리스도와의 연합
정확히는 콘스탄틴 R. 캠벨의 『바울이 본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동일성과 차이의 문제를 철학적·존재론적 범주로 명시적으로 정식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신자와 그리스도가 어떻게 하나가 되면서도 서로 구별되는지를 전혀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다른 성서신학적 개념들로 세분화하여 다룹니다.

1. 이 책이 실제로 묻는 질문
이 책의 원제는 Paul and Union with Christ: An Exegetical and Theological Study이며, 연구 방법은 철학적 개념 분석이 아니라 바울 서신의 표현을 귀납적으로 조사하는 것입니다.
캠벨은 다음과 같은 표현들을 문맥별로 분석합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 “그리스도와 함께”
- “그리스도를 통하여”
- “그리스도에게로”
- 그리스도의 몸, 성전, 건물, 혼인, 옷 입음 등의 비유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하나의 단어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보고 네 범주로 정리합니다.
- 연합(union): 믿음과 성령을 통한 결합, 상호 내주, 혼인 관계
- 참여(participation):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사건에 함께 참여함
- 동일시·정체화(identification):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에 속하여 그분과 운명을 같이함
- 편입(incorporation):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 안으로 들어감
출판사도 이 책이 바울의 모든 관련 전치사 표현을 석의한 뒤 신학적 종합으로 나아간다고 설명합니다. 실제 목차에는 삼위일체, 구원, 그리스도인의 삶, 칭의, 그리고 마지막 정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Zondervan Academic, 원서 샘플과 목차
2. 따라서 ‘동일성과 차이’에 가장 가까운 부분은 있다
캠벨의 네 범주를 우리가 논의한 철학적 언어로 번역하면 다음처럼 대응시킬 수 있습니다.
| 캠벨의 범주 | 동일성과 차이의 관점에서 읽으면 |
|---|---|
| 연합 | 둘은 얼마나 깊이 하나가 되는가 |
| 참여 | 그리스도의 사건이 어떻게 신자의 사건이 되는가 |
| 동일시 |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신자의 정체성이 어떻게 연결되는가 |
| 편입 | 개인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하나에 어떻게 속하는가 |
특히 identification은 명칭상 ‘동일성’ 문제에 매우 가까워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은 철학적 의미의 수적 동일성, 즉 “신자와 그리스도는 동일한 존재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에 속하고 그분에게 충성하며,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새로운 정체성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캠벨은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 신자
그의 구조는 오히려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함
→ 그리스도의 사건에 참여함
→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얻음
→ 그리스도의 몸에 편입됨
관계는 매우 실제적이고 깊지만, 두 인격의 차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3. 그런데 무엇이 빠져 있는가
캠벨은 다음 질문들을 철학적으로 충분히 전면화하지 않습니다.
- 연합은 왜 융합이나 혼합이 아닌가?
- 그리스도와 신자가 하나라면, 어느 의미에서 하나인가?
- 그리스도와 신자의 존재론적 차이는 연합 후에도 어떻게 보존되는가?
- 신자의 새로운 정체성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인가, 그 정체성에 참여하는 것인가?
- 연합 안에서 신자의 독자적 인격과 자유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것은 나의 자기동일성을 폐기하는가, 완성하는가?
- 동일해지지 않으면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관계인가?
캠벨은 이러한 질문에 사용할 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하지만, 그것을 동일성–차이–동등성이라는 철학적 문제로 재구성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주된 관심은 바울의 언어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석의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한 학술 서평도 이 책의 포괄적인 본문 조사는 높이 평가하면서, 연구 범위가 너무 넓어 신학적 성찰이 비교적 얇아졌다고 지적합니다. Themelios 서평
그러므로 “논의하지 못한다”보다는 이렇게 표현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캠벨은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을 연합·참여·동일시·편입이라는 석의적 범주로 치밀하게 분해하지만, 하나 됨과 구별됨의 관계를 동일성과 차이라는 존재론적 문제로 명시적으로 전개하지는 않는다.
4. 키르케고르의 관점에서 보면 드러나는 빈자리
키르케고르의 차이(Forskellighed)와 동등성·닮음(Lighed)을 적용하면, 캠벨의 논의를 한 단계 더 밀고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에는 동시에 세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절대적 차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신자는 피조물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자이고 신자는 구원받는 자입니다. 이 비대칭은 연합으로 소멸하지 않습니다.
참여적 동일성
신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여 그분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났다”는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의 사건과 신자의 사건 사이에 새로운 동일성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두 주체가 한 존재가 되는 수적 동일성이 아닙니다. 같은 구원 사건과 생명에 참여하는 참여적 동일성입니다.
관계적 동등성
그리스도는 신자를 종으로만 멀리 두지 않고 친구, 형제, 신부, 지체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신자를 그리스도와 똑같은 존재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낮아짐과 사랑을 통해 친교가 가능한 자리로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키르케고르적 언어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차이를 소거하여 동일성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제거될 수 없는 차이 안에서 참여적 동일성과 사랑의 동등성이 성립하는 사건이다.
5. 더 중요한 문제: 바울의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이 문제를 극단적으로 제시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기에는 역설적인 문법이 있습니다.
-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 그런데 곧이어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산다.”
-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
- 그런데 믿고 살아가는 주체 역시 여전히 ‘나’다.
바울은 신자의 자아가 소멸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옛 자기중심적 자아는 죽지만, 관계 안에서 새롭게 된 ‘나’는 살아갑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대체해 버리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리스도와 혼합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 연합은 다음 구조를 갖습니다.
자기동일성의 해체 → 그리스도 안에서의 재구성 → 구별된 주체로서의 새로운 삶
캠벨은 이것을 참여와 동일시 및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나는 이전의 나와 어떤 의미에서 동일한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산다면 나와 그리스도의 차이는 어떻게 유지되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까지 깊이 파고들지는 않습니다.
최종 판단
따라서 이 책의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책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동일성과 차이라는 철학적 틀로 논의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전혀 보지 못한 것도 아니다. 연합·참여·동일시·편입이라는 범주를 통해 ‘하나 됨’을 세밀하게 설명하지만, 그 하나 됨 속에서 그리스도와 신자의 차이 및 신자의 자기동일성이 어떻게 보존되는지를 독립된 존재론적 문제로 충분히 이론화하지는 않는다.
즉, 캠벨의 책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이라기보다, 동일성과 차이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할 풍부한 성서적 자료를 제공하는 책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특히 키르케고르와 연결한다면 “연합은 동일화가 아니라, 절대적 차이를 보존하는 참여와 사랑의 동등성”이라는 새로운 논제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칼뱅, 참여, 그리고 선물
이 책은 앞서 본 캠벨의 책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연합 안의 동일성과 차이를 사유합니다. 빌링스의 핵심 명제 자체

가 사실상 그것을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하나님과 인간의 차등적 연합(differentiated union)이다.
즉 신자와 하나님은 실제로 연합하지만, 그 연합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없애는 융합이 아닙니다. Oxford University Press의 책 소개도 빌링스가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하며, 창조와 구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차등적 연합을 긍정한다”고 논증한다고 설명합니다. Oxford University Press, Google Books 책 소개
다만 키르케고르의 절대적 차이(den absolute Forskellighed)와 정확히 동일한 개념은 아닙니다. 두 사람에게 차이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1. 빌링스가 전제하는 두 종류의 차이
빌링스가 해석하는 칼뱅에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적어도 두 차이가 있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
이것은 창조 자체에 속하는 선한 차이입니다.
- 하나님은 자존적이고 무한하십니다.
-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존재를 받은 유한한 피조물입니다.
- 하나님은 은혜의 원천이십니다.
- 인간은 은혜를 받아 응답하는 존재입니다.
이 차이는 구원받은 뒤에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연합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본질에 편입되거나 제4의 삼위가 되지 않습니다. 신자는 신적인 생명에 참여하지만 신적 본질과 동일해지지는 않습니다.
죄로 말미암은 소외
이것은 창조주–피조물의 차이와 다릅니다.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악이 아니지만, 죄 때문에 하나님과 단절된 것은 극복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구원은 두 차이를 서로 다르게 다룹니다.
- 죄로 인한 소외는 화해를 통해 극복됩니다.
-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는 연합 안에서도 보존됩니다.
이를 아주 압축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없애지 않고, 그 차이를 소외가 아닌 친교의 관계로 바꿉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책은 우리의 동일성과 차이 문제에 상당히 근접합니다.
2. 참여는 동일성이 아니라 ‘받아들여진 공유’입니다
빌링스가 말하는 참여(participation)는 인간이 신의 본질 일부가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신자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져 그리스도께 속한 것들을 선물로 받습니다.
-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합니다.
-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합니다.
-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합니다.
- 그리스도의 아들 됨 안에서 양자로 받아들여집니다.
-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변화됩니다.
여기에는 분명 어떤 ‘공통성’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의 생명과 의와 거룩이 신자의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자에게서 독립적으로 발생한 소유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받는 선물입니다.
따라서 빌링스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소유에 의한 동일성보다 참여에 의한 공통성
신자와 그리스도가 같은 본질을 가진 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생명에 신자가 참여함으로써 실제적인 공통성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참여’는 바로 융합 없이 공통성을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3. 차등적 연합은 혼합과 분리를 동시에 거부합니다
빌링스가 해석하는 칼뱅은 서로 반대되는 두 오류를 피하려 합니다.
분리
그리스도와 신자의 관계를 단순한 외적·법적 관계로만 보는 것입니다. 이 경우 그리스도의 의는 신자에게 외부적으로 계산될 뿐, 실제 생명과 변화의 친교가 약해집니다.
빌링스는 칼뱅의 연합이 단순한 법적 귀속보다 훨씬 실제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성령을 통해 신자는 실제로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지고 변화됩니다.
혼합
하나님의 본질이 인간에게 주입되거나 신자가 신적 본질에 흡수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별이 무너집니다.
칼뱅이 오시안더의 본질적 의 개념을 반대한 것도 이 문제와 관련됩니다. 칭의는 하나님의 본질이 신자 안으로 들어와 신자의 본질과 섞이는 일이 아닙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와 실제로 연합하지만, 그리스도와 신자는 구별됩니다.
따라서 차등적 연합은 다음의 중간점이 아닙니다. 양쪽을 동시에 강하게 주장하는 구조입니다.
실제적 연합 + 지속되는 구별
연합을 강하게 말하면 차이가 사라지고, 차이를 강하게 말하면 연합이 약해진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빌링스는 오히려 구별이 보존되어야만 참된 연합과 응답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4. ‘선물’은 차이를 유지하는 관계 구조입니다
책 제목의 ‘선물’은 부수적인 주제가 아닙니다. 선물에는 주는 이와 받는 이의 구별이 전제됩니다.
- 하나님이 먼저 주십니다.
- 인간은 받습니다.
- 인간은 감사와 사랑으로 응답합니다.
- 그 응답 역시 먼저 받은 은혜로 가능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전적으로 은혜라면 인간의 활동은 사라지는가?
일부 현대의 ‘선물 신학’은 칼뱅의 은혜를 일방적 선물로 해석하면서, 그것이 인간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인간의 고유한 행위 능력을 억압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빌링스는 이에 반대합니다. 하나님의 활동과 인간의 활동은 동일한 평면에서 경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활동한다고 해서 인간이 덜 활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을 새롭게 하여 인간답게 기도하고 사랑하며 순종할 수 있게 합니다.
따라서 은혜는 인간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은혜는 인간의 행위를 제거하지 않고 인간의 행위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것도 동일성과 차이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행위와 인간의 행위가 하나로 환원되지는 않지만, 분리되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응답은 하나님의 선물에 의존하면서도 실제로 인간 자신의 응답입니다.
5. 칭의와 성화도 차이를 유지한 채 결합됩니다
빌링스가 강조하는 칼뱅의 이중 은혜(duplex gratia)도 같은 구조를 가집니다.
- 칭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 하나님과 화해합니다.
- 성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실제로 변화됩니다.
둘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함께 옵니다. 그리스도를 둘로 나눌 수 없으므로 칭의와 성화를 완전히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둘을 동일한 것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 칭의는 성화가 아닙니다.
- 성화는 칭의의 근거가 아닙니다.
- 하지만 칭의만 받고 성화에는 참여하지 않는 연합도 없습니다.
여기에서도 빌링스의 기본 문법은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법정적 용서와 성령의 내주에 의한 유기적 변화를 함께 보존하는 것이 칼뱅 참여 신학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정리합니다. OUP 제6장 개요
6. 신적 수용: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오십니다
키르케고르와 특별히 접점이 생기는 것은 칼뱅의 수용·낮추어 맞추심(accommodation)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고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인간이 자기 능력으로 하나님에게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유한성에 맞게 자신을 낮추어 알려 주셔야 합니다.
빌링스의 제5장 제목은 이를 매우 잘 보여줍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맞추어지도록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맞추어지심”
하나님은 말씀, 율법, 성육신, 성례를 통해 인간에게 내려오십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과 동일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변화됩니다. 빌링스는 율법도 인간을 하나님과 연합하도록 초대하는 하나님의 수용으로 해석합니다. OUP 제5장 개요
이것은 『철학의 부스러기』의 왕과 비천한 처녀 비유와 매우 가깝습니다.
- 인간이 스스로 신에게 상승하는 것이 아닙니다.
- 신이 인간에게 내려옵니다.
- 신은 인간이 이해하고 응답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 그 낮아짐은 신과 인간을 본질적으로 동일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 차이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사랑과 친교를 가능하게 합니다.
7. 키르케고르와 빌링스의 결정적인 차이
그러나 두 입장을 그대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키르케고르
키르케고르의 절대적 차이(den absolute Forskellighed)는 『철학의 부스러기』에서 특히 죄와 연결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진리의 조건을 갖지 못하며, 하나님과의 차이조차 하나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강조점은 역설, 순간, 결단, 믿음에 있습니다.
빌링스가 해석하는 칼뱅
빌링스의 강조점은 창조주–피조물의 구별과 참여적 친교입니다. 차이는 단순히 죄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죄가 없더라도 인간은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이 차이는 영원히 유지됩니다.
그러므로 둘의 차이 개념은 다음처럼 구별해야 합니다.
| 키르케고르 | 빌링스가 해석하는 칼뱅 |
|---|---|
| 죄인이 진리 밖에 있다는 절대적 차이를 강조 | 창조주–피조물의 존재론적 구별을 강조 |
| 차이는 인간의 사유로 매개되지 않음 | 차이는 참여와 친교 안에서도 보존됨 |
| 신의 낮아짐과 역설이 중심 | 성령을 통한 참여와 접붙임이 중심 |
| 단독자의 믿음과 결단에 집중 | 기도·성례·율법·교회 속의 참여에 집중 |
| 사랑이 동등성(Lighed)을 추구함 | 은혜가 자연을 완성하고 인간의 응답을 가능하게 함 |
특히 빌링스는 칼뱅의 신화(deification) 언어까지 검토하면서도, 그것이 창조주–피조물의 차이를 무너뜨리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빌링스 자신의 관련 연구도 칼뱅이 이 구별을 유지하는 고유한 방식을 가진다고 명시합니다.
결론
이 책에 대해서는 분명히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칼뱅, 참여, 그리고 선물』은 신과 인간의 차이를 실제로 사유하며, 그 차이를 보존하는 연합을 책의 중심 논제로 삼습니다.
캠벨의 책이 바울의 연합 언어를 연합·참여·동일시·편입으로 분류했다면, 빌링스의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묻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인간은 어떻게 실제적인 행위 주체로 남는가?
하나님과 실제로 연합하면서도 인간은 어떻게 피조물로 남는가?
그의 답은 차등적 연합입니다.
다만 키르케고르의 표현으로 더욱 날카롭게 재구성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자와 그리스도의 존재론적 동일성이 아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 구원자와 구원받는 자의 비대칭성을 보존하면서, 그리스도의 생명에 실제로 참여하게 되는 관계적·참여적 일치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언급된 두 책 가운데, 동일성과 차이의 관점에서 연구하기에는 빌링스의 책이 훨씬 직접적이고 생산적인 자료입니다. 다만 빌링스는 이를 ‘동일성과 차이’라는 현대철학의 용어보다는 차등적 연합, 창조주–피조물의 구별, 참여, 수용, 선물과 응답이라는 신학적 문법으로 전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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