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사라질 때 “너의 것”도 사라진다

관련 링크: 키르케고르와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


키르케고르 <사랑의 실천>에 나타난 자기부인의 사랑의 역설

키르케고르의 《사랑의 실천》 제2부를 읽다 보면 매우 놀라운 문장을 만나게 된다. 그는 참된 사랑 안에서는 “나의 것”과 “너의 것”의 구별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처음 읽으면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사랑이 어떻게 소유의 경계를 지운다는 말일까?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사랑은 흔히 말하는 감정적인 사랑이나 사랑에 빠진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는 사랑, 곧 자기희생적 사랑에 있다. 이 사랑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속한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내 시간,
내 능력,
내 권리,
내 명예,
심지어 내 생명까지도 더 이상 “내 것”이라고 붙들지 않는다.

사랑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의 역설이 발생한다.


‘네 것’의 해체

“내 것”이라는 개념은 언제나 “너의 것”과 함께 존재한다. “내 것”이 있으려면 동시에 “내 것이 아닌 것”, 곧 “너의 것”이 있어야 한다. 반대로 “너의 것”도 “내 것”을 전제로 한다. 두 개념은 서로 대립하면서 동시에 성립하는 관계적 개념이다.

그러므로 자기부인의 사랑이 “내 것”이라는 주장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놀랍게도 “너의 것”이라는 개념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너의 것”은 원래 “내 것이 아닌 것”이라는 뜻인데, 이미 “내 것”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때 사랑은 처음에는 말한다.

“내 것이 아니라 네 것이다.”

그러나 자기부정이 더 깊어질수록 사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사랑은 “네 것이다”라고조차 말할 수 없는 자리로 나아간다. 왜냐하면 이미 “나”와 “너”의 대립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랑의 혁명

이것이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사랑의 혁명이다.

사랑은 단순히 더 많이 주는 윤리가 아니다.
사랑은 소유의 구조 자체를 뒤흔드는 사건이다.

그래서 그는 참된 사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의 하늘의 축복이라고 부른다. 자기를 부인한 사람은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붙들지 않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얻게 된다.

겉으로 보면 모순처럼 들린다.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
그런데 동시에
“모든 것이 내 것이다.”

그러나 키르케고르에게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복음의 역설이다.

자기 것으로 움켜쥐는 사람은 결국 잃는다.
그러나 내려놓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다시 받는다.

이 역설은 예수님의 말씀과 깊이 연결된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누가복음 17:33

자기의 생명을 붙들려는 자는 오히려 잃고,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기는 자는 생명을 얻는다.

키르케고르에게 자기부인의 사랑도 바로 이와 같다.

자기를 잃음으로 얻는다.
소유를 포기함으로 모든 것을 받는다.
“내 것”을 버림으로 모든 것이 선물이 된다.


하나님의 것

그리고 그 마지막에서 사랑은 고백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바로 이때 바울의 말이 새로운 의미로 들리기 시작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고린도전서 3:21

바울이 말하는 “만물이 다 너희 것”은 소유의 확대가 아니다. 더 많이 차지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붙들지 않을 때,
하나님 안에서 비로소 모든 것이 선물로 주어진다는 뜻이다.

참된 사랑은 “내 것”을 폐기한다.
그리고 “내 것”이 사라질 때 “너의 것”도 사라진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더 이상 경쟁과 구분의 언어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모두에게 열려 있는 선물의 세계이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사랑의 혁명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각주

  1. Søren Kierkegaard, Kjerlighedens Gjerninger (1847), SKS 9, 266–267. 키르케고르는 여기서 참된 사랑 안에서 “Dit”의 규정이 사라지고 “Alt bliver den sande Kjerliges”라고 말한다.
  2. 고린도전서 3:21–23. 바울의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는 선언은 소유권의 확대라기보다 하나님 안에서 주어지는 영적 자유와 상속의 언어로 읽을 수 있다.
  3. 누가복음 17:33.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살리리라”는 말씀은 자기보존의 역설을 넘어 자기포기의 복음적 구조를 드러낸다.
  4. 키르케고르의 사랑 개념은 낭만적 사랑(erotisk Kjerlighed)과 구별되며, 철저히 의지와 자기부정, 그리고 하나님 앞의 책임으로 이해된다. 이에 대해서는 《사랑의 실천》 제1부와 제2부 전체를 함께 참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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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ies: 작품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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