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와 실존적 역사
— 키르케고르의 역사 이해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문제 제기
근대 역사철학에서 자주 반복되는 명제 가운데 하나는 “세계사는 세계 심판이다”(die Weltgeschichte ist das Weltgericht)라는 표현이다. 이 명제는 역사적 사건의 전개와 결과가 인간 행위의 정당성을 판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역사 속에서 승리하거나 영향력을 남긴 행위가 결국 정당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역사철학적 관점이다. 이러한 사고는 특히 헤겔의 역사철학 속에서 체계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이 명제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다. 그는 세계사가 윤리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윤리의 참된 장소를 세계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개인의 실존에서 찾는다.
2. “세계사는 세계 심판이다”라는 역사철학적 명제
“세계사는 세계 심판이다”라는 표현은 원래 프리드리히 쉴러의 시 「Resignation」에서 등장한다. 쉴러는 인간의 행위가 역사 속에서 평가된다는 의미로 이 표현을 사용하였다.1 이후 이 문장은 헤겔의 역사철학과 결합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헤겔에게서 세계사는 단순한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이성이 자신을 전개하는 과정이며, 역사 속에서 자유의 발전이 실현된다. 따라서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결과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이성의 자기 실현이며, 역사 자체가 인간 행위의 정당성을 판정하는 장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역사적 성공이나 영향력이 윤리적 정당성과 일정한 관계를 맺게 된다. 다시 말해 세계사적 중요성을 획득한 사건이나 인물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역사적 필연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때 역사 자체가 일종의 심판의 장이 된다.
3. 키르케고르의 비판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역사 이해를 근본적으로 비판한다. 그는 『결론의 비학문적 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사는 세계 심판이라고 말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사이의 비교 가능성(Commensurabilitet)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정신은 세계사를 그렇게 볼 수 없다.”2
키르케고르의 논점은 분명하다. 인간은 역사적 사건의 외적 측면만을 볼 수 있을 뿐, 인간 행위의 내적 동기와 양심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윤리적 진실은 외적 사건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내면에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이 세계사를 근거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때 키르케고르는 중요한 개념을 사용한다. 그것이 바로 외적인 것(det Udvortes)과 내적인 것(det Indvortes)의 구별이다. 역사적 사건은 외적인 영역에 속하지만, 윤리는 내적인 영역에 속한다. 하나님만이 외적 사건과 내면의 양심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만 세계사가 심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비교 가능성(Commensurabilitet)3을 가지지 못한다.
4. 실존적 역사 이해
이러한 비판을 통해 키르케고르는 전혀 다른 방식의 역사 이해를 제시한다. 그에게 역사란 세계적 사건의 총체가 아니라 개인의 실존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다시 말해 동일한 역사적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실존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역사적 사건이 단순한 정치적 사건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님 앞에서의 소명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 경우 역사적 사건의 의미는 객관적 결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실존적 결단 속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키르케고르에게 역사는 세계사의 형태로 이해될 때 윤리적 의미를 상실한다. 반대로 역사가 개인의 실존 속으로 들어올 때 비로소 윤리적 사건이 된다. 이 점에서 키르케고르의 역사 이해는 세계사 중심의 역사철학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5. 결론
“세계사는 세계 심판이다”라는 명제는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인간 행위를 평가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이해가 윤리적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외적 역사와 내적 양심을 동시에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리적 판단의 기준은 세계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개인의 실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는 단순한 세계사적 전개가 아니라 개인의 실존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결국 키르케고르에게서 역사는 세계사의 차원이 아니라 실존의 차원에서 이해될 때 비로소 윤리적 의미를 갖는다.
각주
- Friedrich Schiller, “Resignation,” in Schillers sämmtliche Werke, vol. 1 (Stuttgart and Tübingen, 1838), 98. ↩︎
- Søren Kierkegaard, 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trans. Howard V. Hong and Edna H. Hong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2), 141. ↩︎
- Commensurabiliteten for : 이 덴마크어는 “…사이의 비교 가능성, 서로 비교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상태(sammenligneligheden mellem)”를 가리킨다.
본문 맥락에서의 의미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외적인 것(det Udvortes)과 내적인 것(det Indvortes) 사이의 비교 가능성(Commensurabilitet)을 가지신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다음 뜻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외적 역사)와 인간의 양심과 의도(내면) 를 같은 기준에서 함께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에게는 외적 사건과 내적 진실 사이의 완전한 비교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것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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