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사상에 영향 받은 자는 누구인가?

원문(SKS 4, 219)은 이렇습니다.

이 사유를 절대적으로 사유하면, 곧 선재(Præexistents)의 여러 상태에 대해 반성하지 않으면, 이 그리스적 사유는 옛 사변과 현대의 사변(den ældre og moderne Speculation)에서 되풀이됩니다 — 영원한 창조(en evig Skaben), 아버지로부터의 영원한 발출(en evig Udgaaen fra Faderen), 영원한 신-됨(en evig Gudvorden, 신성의 생성), 영원한 자기희생(en evig Sig-Offren), 지나간 부활(en forbigangen Opstandelse), 이미 치른 심판(en overstanden Dom). 이 모든 사유는 상기(Erindring)에 관한 저 그리스적 사유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늘 알아채지는 못하는데, ‘더 나아감(gaae videre)’으로써 거기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여섯 개가 전부 상기설이라는 것은 독자의 추론이 아니라 키르케고르 자신의 판결입니다. 다만 이 사상이 “누구의 것이냐”는 질문에는 두 겹으로 답해야 합니다.

먼저, SKS 주석(K4, 219,15)의 답: 여섯 특징이 한군데 모여 있는 출처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옛 사변으로는 영지주의, 플로티누스, 알렉산드리아 신학(특히 오리게네스), 중세 신비주의(에리우게나, 에크하르트)를, 현대 사변으로는 셸링, 헤겔, 마르하이네케, 바더를 짚습니다. 그러니 플로티누스는 맞지만, 여섯 중 하나에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옛’ 쪽 전체의 원형입니다. 그리고 플로티누스는 기독교인이 아니므로, “기독교 안에서 누구냐”고 물으시면 답은 오리게네스입니다. 영혼의 선재를 실제로 가르친 기독교 신학자이고(553년 단죄), 하나님이 영원히 창조자이시므로 창조도 영원하다고 말했으며, 로고스의 영원한 발출을 플로티누스식 유출과 나란히 사유한 사람입니다. 키르케고르 자신의 1839년 메모(Pap. II A 448)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로고스·물질·영혼·악의 선재를 “역행하는 무한 속의 prius”라 부르고, 이것이 무한한 앞으로의 발전(futurum)만큼이나 깊은 사유를 그르친다고 적었습니다. 본문의 præ/post 대비가 이 메모에서 나옵니다.

둘째, 여섯 개를 낱낱이 짚으면 (단, 저자가 일부러 한 사람에게 고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전제로):

표현옛 사변현대 사변비고
영원한 창조오리게네스, 에리우게나헤겔·셸링 — 하나님은 세계 없이 하나님이 아니므로 세계를 영원히 정립함창조에 ‘때’가 없어짐
아버지로부터의 영원한 발출플로티누스의 유출, 오리게네스의 로고스헤겔 — 절대자가 타자(자연·역사)로 영원히 나감니케아 신조의 정통 교리이기도 함 — 표적은 교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우주 과정으로 절대화하는 것
영원한 신-됨신비주의(에크하르트의 하나님의 탄생)헤겔·셸링·바더 — 하나님은 존재가 아니라 과정‘되어감(Vorden)’이 영원 속으로 흡수됨
영원한 자기희생계 13:8 “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 양”헤겔의 ‘사변적 성금요일’, 마르하이네케 — 하나님의 죽음은 이념의 영원한 계기십자가가 날짜를 잃음
지나간 부활딤후 2:18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헤겔 우파 — 부활 = 공동체 안에서 정신이 일어남, 이미 일어난 것성경이 이미 이단으로 이름 붙인 사유
이미 치른 심판오리게네스의 만유회복(apokatastasis)헤겔 — “세계사가 곧 세계심판”종말이 앞으로가 아니라 뒤에 놓임

코펜하겐에서 이 목소리를 낸 사람은 마르텐센이겠지만, 주석은 이 대목에서 그의 이름을 대지 않으므로 그렇게 단정하면 안 됩니다.

핵심은 표에서 오른쪽 칸입니다.

여섯 표현이 상기설인 이유는 내용이 그리스적이어서가 아닙니다. 그중 둘(발출·어린 양)은 정통 교리의 언어이고, 하나(지나간 부활)는 성경이 지목한 이단입니다. 공통점은 결정적인 일이 이미 영원 안에서 다 일어났다는 구조입니다. 그러면 시간 안의 사건은 영원한 진리의 그림(Vorstellung)에 지나지 않고, 순간(Øieblikket)은 결정적 의미(afgjørende Betydning)를 잃습니다 — A안 38쪽의 “무(et Intet)”가 그대로 돌아옵니다. “사유를 절대적으로 사유하면”이라는 조건절이 그 뜻입니다. 시간적 계기를 세지 않는 순간, 기독교의 사건들도 상기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감으로써 거기 도달했기 때문에 알아채지 못한다”는 문장이 야유입니다. 소크라테스보다, 신앙보다 더 나아갔다는 사람들이 도착한 곳이 소크라테스 이전, 곧 플라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목록은 1장 A의 마지막 판결과 5장의 ‘동시대성’을 미리 겨냥합니다. B안이 요구하는 것은 결정적인 일이 시간 안에서, 한 번, 날짜를 가지고 일어났다는 것이고, 여섯 개의 ‘영원한 ~’은 모두 그 날짜를 지우는 방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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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ies: 작품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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