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8:35, Pap. III A 181, 1841년
참으로(og i Sandhed), 하나님과의 고난의 교제, 눈물의 언약(en Taarernes Pagt)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자체로 너무도 아름답다.
해설
이 짧은 단상은 키르케고르의 고난 이해 전체를 거의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특히 여기서 핵심은 두 표현이다.
- “고난의 교제(Lidelsernes Samfund med Gud)”
- “눈물의 언약(Taarernes Pagt)”
먼저 “교제(Samfund)”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하다.
키르케고르에게 고난은 단순히:
- 인간이 홀로 견뎌야 하는 심리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 하나님과 함께하는 관계적 사건이다.
즉, 고난은 하나님과의 교제(Samfund med Gud)가 된다.
이 점은 그의 일기 NB25:64–65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 하나님은 인간을 고난 속으로 이끄시고,
- 현상적으로(phænomenalt)는 마치 그를 버리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 바로 그 자리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안다(veed med Gud).
그래서 고난은 단순한 징벌이 아니라:
- 하나님 관계(Guds-Forhold)의 가장 깊은 내면성(Inderlighed)이다.
그리고 여기서 키르케고르는 더 나아가 그것을:
곧 “눈물의 언약”이라고 부른다.
“언약(Pagt)”이라는 표현은 성서적이다.
성경에서 언약은:
-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 존재적 결속,
- 관계의 결단,
-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묶임
을 의미한다. 그런데 키르케고르는 여기서:
- 영광의 언약도,
- 승리의 언약도 아니라,
“눈물의 언약(Taarernes Pagt)”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독교적 하나님 관계는:
- 현상적 성공,
- 세속적 번영,
- 안전함
안에서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 눈물,
- 상실,
- 고난,
- 버려짐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은 가장 깊게 결속된다. 이 점에서 키르케고르는 고난을 단순히:
- 참고 견디는 것 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은:
- 하나님과의 은밀한 연합,
- 영(Aand)의 교제,
- 내면적 친밀성(Inderlighed)
이 된다. 그래서 그는 놀랍게도 말한다.
- “그것은 그 자체로 너무도 아름답다(saa saare skjøn).”
물론 이것은:
- 고통 자체를 미학화하거나,
- 병적으로 숭배하는 말이 아니다.
키르케고르는 NB25:65에서 분명히 말했다.
- 고난은 끝까지 고난이며,
- 실제로 아프고,
- 실제로 인간을 찢는다.
그러나 동시에:
- 하나님과 함께하는 고난은
- 가장 깊은 아름다움(skønhed)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인간은:
- 하나님과의 비밀(Hemmelighed med Gud),
- 하나님과의 교제(Samfund),
- 영원(Evighed)
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눈물의 언약(Taarernes Pagt)”은 키르케고르 실존론의 핵심을 드러낸다.
참된 기독교는:
- 승리의 종교가 아니라,
- 하나님과 함께 우는 법을 배우는 실존이다.
그리고 바로 그 눈물 속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가장 깊이 결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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