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15:101
악( det Onde), 곧 죄(Synden)가 바로 이해할 수 없는 것(det Ubegribelige),[b] 세계의 비밀(Verdens Hemmelighed)인 까닭은 그것이 바로 근거 없는 것(det Grundløse)[c]이기 때문이라는 대목은 참으로 훌륭한 짧은 대목이다.[a]1 그가 다우프(Daub)를 인용하는 것도 반갑다. 다우프 역시 『가룟 유다』에서 이러한 견해에 찬성하며, 악을 기적적인 것(det Mirakuløse)의 독특한 한 범주에 포함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이러한 관점을 포기하고, 예컨대 『인간의 자유에 관한 가설들』2에서는 악을 부정적인 것(det Negative)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a] 율리우스 뮐러(Julius Müller), 『죄론』 제1부, 457쪽 이하.3
- [b] 꿰뚫어 볼 수 없는 것(det Uigjennemtrængelige).
- [c] 자의적인 단절(den vilkaarlige Afbryden).4
죄의 ‘이해 불가능성’(Ubegribelighed)이 인식(Erkjenden)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는 율리우스 뮐러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만일 인식의 한계 때문이라면, 계속 사변해 나가다 보면 결국 죄를 이해하게 되리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아니다. 이해 불가능성이야말로 죄의 본질(Væsen)이다.5
아주 단순하게도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한때 어떤 죄에 빠져 살다가 이제 구원받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에게 이제는 자신이 어떻게 그렇게 죄를 지을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니다. 지금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이 순수해질수록 악은 그에게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 [d] X2 A437. 그러므로 사람이 죄를 짓는 일이나 이미 지은 죄를 돌이켜 생각할 때, 자신의 상태를 오히려 술에 취한 사람의 상태로 묘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그 자신이, 혹은 그의 의식(Bevidsthed)이 마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던 것이다. 여기에 ‘근거 없는 것’이라는 규정(Bestemmelse)이 놓여 있다. 그러나 악이 인간 안에서 스스로를 이 어둠 속으로 내던지려는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것이 책임(Ansvar)을 져야 하는 일이며 본질적으로 의지(Villien)에 자리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6 술꾼이 독한 술을 지나치게 마셔 취하게 된 데에는 책임이 있지만, 취한 상태 자체는 바로 의식 아래로 가라앉는 것이듯이, 죄도 그러하다.
나는 죄의 이러한 이해 불가능성을 다른 방식으로도 입증할 수 있다. 안티클리마쿠스(Anti-Climacus)는 악과 관련해서는 가능성(Mulighed)과 현실성(Virkelighed)의 관계가 다른 경우와 반대가 된다는 점을 올바르게 보여 주었다.7 다른 경우에는 현실성이 가능성보다 높지만, 악과 관련해서는 현실성이 가능성보다 낮다. 선(det Gode)은 가능성으로서는 불완전한 것이고 현실성으로서는 완전한 것이지만, 악은 현실성으로 있을 때보다 가능성으로 있을 때가 더 낫다.
그런데 이해한다는 것(at begribe)은 현실성을 가능성으로 해소하는 것(at opløse)이다(요하네스 클리마쿠스 참조8). 그러나 이 경우처럼 현실성이 가능성보다 낮다면,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죄는 엄밀히 말해 현실성이 되어서야 비로소 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성으로 해소하는 것이므로, 죄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능성으로 해소되고 나면 그것은 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은 가능성과 현실성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므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가능성으로서의 선은 더 낮은 것이며, 선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실현하는 것 사이에는 질적인 간격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주석
- “참으로 훌륭한 짧은 대목……악은……근거 없는 것이다”: 율리우스 뮐러의 『죄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 제1권 『죄의 본질과 근거에 관하여』, 457쪽에 나오는 다음 대목을 압축하여 옮긴 것이다.
악이 그 본질상 근거 없는 것(det Grundløse), 곧 모든 이성적 연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 모든 이해는 근거와 연관에 의존하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악의 발생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악은 세계의 절대적인 비밀이다. 악은 그 가장 깊은 곳에서 언제나 꿰뚫을 수 없는 어둠으로 남는다.
그렇다고 악을 의욕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의식 앞에서도 전적으로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의 의지를 결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참되고 객관적인 근거들에 의해 자신의 의지가 결정되도록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리에 겉보기의 근거들을 놓는다. 그는 개별적인 자기 자신의 자아가 지닌 저급한 이해관계들을 제멋대로 결정적인 규범으로 끌어올린다. 바로 이것이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없는 것(det Ubegribelige)이다.
※ 인용문 원문은 독일어이며, 괄호 안의 덴마크어는 앞선 일기 본문의 대응 개념어다. ↩︎ - “그가 다우프를 인용한다……『가룟 유다』……『인간의 자유에 관한 가설들』”: 율리우스 뮐러의 『죄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 제1권 『죄의 본질과 근거에 관하여』, 460쪽에 있는 주석의 전반부를 압축하여 옮긴 것이다.
악의 이러한 이해 불가능성(Ubegribelighed)은 특히 다우프의 『가룟 유다』 제2분책, 96쪽 이하에서 철저하고 진지하게 밝혀져 있다. 다우프가 악에 기적의 개념을 적용하고, 나아가 악에는 근거뿐 아니라 원인도 없다고 주장한 것은 잘못이었으며 그 결과도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렇지만 로젠크란츠가 『다우프에 대한 회상』에서 시사하듯이, 후기에 이르러 다우프에게서 부정성의 논리적 범주가 악의 이해 불가능성을 집어삼켜 버렸다면, 그것을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의 진보라고 볼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로젠크란츠의 보고가 사실이라는 점은 『의지의 자유에 관한 가설들의 서술과 평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키르케고르 자신도 K. 로젠크란츠의 『카를 다우프에 대한 회상』(베를린, 1837)을 소장하고 있었다. 소장 도서 목록 번호는 743이다.
— 다우프(Daub): 49,2 주석 참조.
— 『가룟 유다』: 카를 다우프, 『가룟 유다, 또는 선과의 관계에서 본 악』, 제1–3분책, 하이델베르크, 1816–1818.
— 『인간의 자유에 관한 가설들』: 『추밀교회고문이자 교수인 C. 다우프 박사의 의지의 자유에 관한 가설들의 서술과 평가. 저자의 동의를 얻어 그의 강의에서 편집함』, J. C. 크뢰거 편집, 알토나, 1834.
※ 인용문은 독일어이며, 괄호 안의 덴마크어는 일기 본문의 대응 개념어다. ↩︎ - “율리우스 뮐러……제1부, 457쪽 이하”: 율리우스 뮐러의 『죄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 제1권 『죄의 본질과 근거에 관하여』(49,2 주석 참조), 457–458쪽을 가리킨다. 이 대목은 제3책 제1부 제3장 「죄의 가능 근거로서 인간의 의지의 자유」(450–474쪽)에 속한다. ↩︎
- “자의적인 단절(den vilkaarlige Afbryden)”: 율리우스 뮐러의 『죄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 제1권 『죄의 본질과 근거에 관하여』, 456–457쪽 참조.
악은 그 본질상 자의이다. 그런데 자의란 이성적 연관과 더 높은 합목적성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다. 개개의 행위는 오직 그 연관과 합목적성 안에서만 자신의 참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 - “율리우스 뮐러는 죄의 ‘이해 불가능성’이……바로 그 본질이라고 말한다”: 율리우스 뮐러의 『죄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 제1권 『죄의 본질과 근거에 관하여』, 457–458쪽에 나오는 다음 대목을 압축하여 옮긴 것이다.
따라서 악의 발생이 이처럼 이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악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 인식에만 따르는 어떤 한계가 아니라, 악 자체의 본성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해 불가능성(Ubegribelighed)은 우리의 인식(Erkjenden)이 성장한다고 해서 사라질 수 없다. 곧 인식이 한층 더 발전한 어느 단계에 이르면, 이해 불가능성 대신 악의 더 높은 필연성에 대한 통찰이 들어서게 되는 것은 아니다.
※ 인용문은 독일어이며, 괄호 안의 덴마크어는 일기 본문의 대응 개념어다. ↩︎ - 앞선 주석들에서 언급한 『죄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 제1권 『죄의 본질과 근거에 관하여』(49,2 주석 참조)의 해당 장, 117–119쪽을 가리킨다. 여기서 율리우스 뮐러는 죄를 결여로 설명하는 견해(50,6 주석 참조), 또는 ‘나약함에서 비롯되는 죄’로 설명하는 견해를 논한다. 그는 “단순한 불완전성, 의지의 나약함”에서 비롯되는 죄악된 성향들이 “악랄함과 강력한 도착성으로” 격화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결여 이론이 인정하는 것보다 더 악한 원리가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117–118쪽). 조금 뒤에는 다음과 같이 쓴다.
더 나아가, 악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 곧 이기심과 증오가 명료한 의식 아래 삶의 원리로 격상되고 그러한 원리로서 계획적으로 실행되는 곳에서, 악이 의지력의 전반적인 마비와 지상의 사물을 향한 지성의 약화를 동반하는 경우는 드물고, 오히려 그 반대인 양자의 탁월한 힘을 동반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까닭은 무엇인가? 인간은 선을 행할 때뿐 아니라 악을 행할 때에도 자신의 힘을 모을 수 있다. 악을 향한 단호한 지향 역시 인간을 전율시키고, 그 영혼의 능력들을 격렬하게 긴장시켜 끊임없는 활동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은 충분히 자주 보여 주지 않는가*)? (118–119쪽)
*) 뮐러는 이 각주에서 플라톤을 참조하도록 한다. 이어지는 두 주석을 보라.
※ 표제의 “한층 강화된 힘”에 해당하는 덴마크어는 en potenseret Energie다. 인용문 원문은 독일어다. ↩︎ - “안티클리마쿠스는……가능성으로서의 악과……현실성으로서의 악을……올바르게 보여 주었다”: 아마도 안티클리마쿠스(Anti-Climacus)의 『죽음에 이르는 병』(1849, 28,24 주석 참조) 제1부 A의 B항 「절망의 가능성과 현실성」(Fortvivlelses Mulighed og Virkelighed) 서두에 나오는 규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초판 9–10쪽, 『쇠렌 키르케고르 저작집』(SKS) 제11권, 130–131쪽 참조. ↩︎
- “요하네스 클리마쿠스 참조”: 요하네스 클리마쿠스(Johannes Climacus)의 『비학문적 후서』(1846, 65,24 주석 참조) 제2부 제2편 제3장 제2절 「가능성은 현실성보다 높다. 현실성은 가능성보다 높다. 시적·지성적 이상성, 윤리적 이상성」을 참조하라. 『쇠렌 키르케고르 저작집』(SKS) 제7권, 295–296쪽.
절 제목의 덴마크어는 “Mulighed høiere end Virkelighed. Virkelighed høiere end Mulighed. Den poetiske og intellectuelle Idealitet; den ethiske Idealitet”이다. ↩︎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