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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B.
동일성의 원리(Identitets-Principet)1가 어떤 의미에서는 더 높은 것이며, 또 그것이 모순 원리(Contradictionsprincipet)2의 기초를 이룬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동일성의 원리(Identitets-principet)는 단지 인간 사유(msklige Tænkning)의 경계(Grændsen)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푸른 산들(de blaae Bjerge)3과 같고, 화가(Tegneren)가 “배경(Grunden)”이라고 부르는 선과도 같다.4 그러나 그림(Tegningen) 자체가 핵심이다.
내가 시간(Tiden) 속에 살아 있는 한, 동일성의 원리(Identitets-Princ.)는 단지 하나의 추상(Abstraktion)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모든 차이(Forskjelligheden)를 제거해 버림으로써 만물의 동일성(Identiteten af Alt)을 사유하고 있다고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믿게 만드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는 이렇게 물어보아야 한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가? 왜냐하면 동일성(Identiteten) 안에서는 나는 시간 밖(outen for Tiden)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 속에서 유지된 동일성의 원리(Identitets-Principet fastholdt i Tiden)의 유일한 윤리적 귀결(etiske Consequents)은 자살(Selvmord)이다.
혼란(Forvirringen)은 단지 사람들이 책을 쓸 때 사용하는 범주(Categorier)와 실제 살아갈 때 사용하는 범주가 서로 다르다는 데서 발생한다. 오! 비참한 책 쓰기(elendige Bogskriven)!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모순(Modsigelsen) 속에서 살아간다. 왜냐하면 삶(Livet)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나는 영원한 진리(evige Sandhed)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Msk.)으로서 결코 꿰뚫을 수 없는(gjennemtrænge) 다수적 현존(mangfoldige Tilværelse) 속에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이 그것을 꿰뚫을 수 있다면, 그는 전지한 존재(alvidende)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연결 고리(Forbindelsesleddet)는 믿음(Troe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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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성(Identiteten)은 결코 출발점(terminus a quo)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도달점(terminus ad quem)이다. 사람은 오직 추상(Abstraktion)을 통해서만 끊임없이 그것에 도달하게 된다.
일기 해설
키르케고르가 여기서 말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인간은 실제 존재(Tilværelse, 삶) 속에서는 결코 순수한 동일성(Identitet) 안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언제나:
- 시간(Tid)
- 변화
- 차이(Forskjellighed)
- 관계
- 긴장
- 모순(Modsigelse)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일성은 “삶의 실제 출발점”이 아니라, 사유가 나중에 추상적으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1. 동일성이 출발점이라면 어떤 상태인가?
동일성 원리(Identitets-Principet)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A는 A다.
(어떤 것은 자기 자신과 동일하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키르케고르는 묻는다.
“좋다. 그런데 실제 삶은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예를 들어:
- 나는 어제의 나와 동일한가?
- 나는 변화하지 않는 존재인가?
- 인간은 하나의 고정된 본질인가?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인간은:
- 계속 변하고,
- 흔들리고,
- 갈등하고,
- 시간 속에서 생성되며,
- 자기 자신과 싸운다.
즉 삶은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와 모순” 속에서 진행된다. 그래서 동일성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은, 실제 삶을 지워버리는 추상이라는 것이다.
2. 그래서 그는 “푸른 산들(de blaae Bjerge)” 비유를 쓴다
동일성은 멀리 보이는 푸른 산처럼 보인다. 즉:
- 멀리서 보면 하나처럼 보이지만,
- 실제 가까이 가면 수많은 굴곡과 차이와 복잡성이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은 하나다”, “모든 것은 동일하다” 같은 철학은 멀리서는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실제 삶 속에서는:
- 고통도 있고,
- 죄도 있고,
- 시간도 있고,
- 선택도 있고,
- 책임도 있고,
- 절망도 있다.
즉 삶은 절대로 단순한 동일성이 아니다.
3. 왜 “출발점(terminus a quo)”이 될 수 없는가?
왜냐하면 인간은 처음부터 “삶 속”에 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 살아가고,
- 고통받고,
- 선택하고,
- 모순 속에 존재한다.
그 다음에야 철학적으로 추상한다. 즉 동일성은 삶(존재) → 추상 → 동일성의 순서로 나오는 것이다. 반대로 헤겔식 체계처럼 동일성 → 차이 → 발전으로 가면, 실제 실존이 추상 속에 흡수된다고 키르케고르는 본다.
4. 그래서 “동일성은 도달점(terminus ad quem)”이다
이 말은 중요하다. 인간은 실제 삶 속에서 수많은 차이를 경험한 뒤에야, 추상적으로 “통일성”이나 “동일성”을 생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 우리는 먼저 개별 인간들을 만난다.
- 그 다음 “인간성”이라는 추상을 만든다.
즉 추상은 현실 뒤에 온다. 키르케고르는 이 점을 강조한다.
존재(Tilværelse)가 먼저이고,
체계(system)는 나중이다.
5. 왜 이것이 자살(Selvmord)과 연결되는가?
여기서 키르케고르의 급진적 통찰이 나온다. 그는 말한다.
만일 누군가가 시간 속에서도 완전한 동일성만을 고집한다면,
그 사람은 실제 삶을 견딜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삶은 본질적으로 모순이기 때문이다.
- 영원한 진리(evige Sandhed)
- 시간적 존재(Tilværelse)
는 긴장 속에 있다. 인간은 둘 다 동시에 가진다.
그런데 동일성만 붙들면,
시간과 차이와 고통을 제거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극단적으로 “시간 속에서 동일성 원리를 유지하는 유일한 윤리적 귀결은 자살이다”라고 말한다.
즉:
- 완전한 동일성만 원한다면,
- 변화와 모순을 제거해야 하고,
- 결국 시간적 삶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삶 자체가 이미 모순이기 때문이다.
6. 그래서 마지막 결론이 “믿음(Troen)”이다
키르케고르는 말한다. 우리는:
- 영원한 진리도 가지고,
- 동시에 시간 속의 불완전한 삶도 산다.
인간은 이 둘을 완전히 종합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전지(alvidende)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믿음(Tro)이다.
믿음은:
-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즉 믿음은 헤겔처럼 “모든 모순의 종합”이 아니라, 영원과 시간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실존적 관계다. 이것이 키르케고르가 동일성 철학보다 믿음을 더 높게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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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동일성의 원리(Identitets-Principet) : 고전 논리학(klassiske logik)의 세 가지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이다. 동일성 원리(Identitetsprincippet)는 모든 논리적 대상(logisk størrelse)은 완전히 자기 자신과 동일(restløst identisk med sig selv)하다고 주장한다.
고전 논리학의 창시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이 원리를 전제하고 있으나 명시적으로 공식화하지는 않았다. 반면 그는 《형이상학(Metafysikken)》에서 나머지 두 기본 원리, 곧 모순율(kontradiktionsprincippet, 1005b 19)과 양가율(bivalensprincippet, 1011b 23)을 정의하였다.
고전 논리학에 대한 논쟁적 비판(polemik) 속에서 헤겔(Hegel)은 동일성 원리를 공허한 동어반복(tom tautologi)으로 거부하며, 대신 동일성(identiteten)을 “자기 자신과 절대적으로 다른 것(absolut forskjellig fra sig selv)”으로 주장한다. 이는 헤겔의 《논리학(Wissenschaft der Logik)》 제1권 제2부에 나타난다. ↩︎ - 모순 원리(Contradictionsprincipet) : 또는 모순율(modsigelsens grundsætning). 이는 동일한 의미 안에서 같은 사물(the samme ting)에 대해 동일한 규정(bestemmelse)이 동시에 성립하면서 동시에 성립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원리이다. 예를 들어, 어떤 것이 특정 성질(egenskab)을 가지면서 동시에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형이상학(Metafysikken)》 제4권(1005b 17–20)에서 이 원리가 모든 원리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sikreste af alle)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모든 논증(bevisførelse)은 언제나 이 원리를 전제하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직접 증명할 수는 없으며, 단지 그것의 타당성(gyldighed)을 부정하려는 모든 시도를 논박(gendrive)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변 철학(spekulative filosofi), 특히 헤겔(Hegel)의 철학에서는 모순 원리(contradiktionsprincippet)가 “지양(ophævet)”된다. 헤겔에게 모순(modsigelsen)은 모든 것의 발전 원리(udviklingsprincippet)이다. 따라서 모든 입장(position)은 변증법적 과정(dialektisk proces) 속에서 자신의 반대(opposition)로 발전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단순히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성과 차이(identity og forskel)의 더 높은 통일(højere forening)에 이르게 한다. 헤겔의 《논리학(Wissenschaft der Logik)》과 《철학적 학문의 백과전서(Encyclopädie der philosophischen Wissenschaften)》에 이러한 사상이 나타난다.
모순 원리의 지양(ophævelse)에 대한 헤겔의 가르침은 덴마크에서도 강한 논쟁(stærk debat)을 불러일으켰다. J. L. 하이베르그(J.L. Heiberg)와 H. L. 마르텐센(H.L. Martensen) 등은 헤겔을 따랐고, 반면 J. P. 뮌스터(J.P. Mynster)와 F. C. 시베른(F.C. Sibbern) 등은 이 원리의 보편적 타당성(universelle gyldighed)을 옹호하였다. ↩︎ - 푸른 산들(de blaae Bjerge) : 멀리 있는 것(det fjerne), 불분명한 것(ubestemte), 동화적·환상적인 것(eventyrlige)을 뜻하는 표현. 일반적인 낭만주의적 표현(romantisk udtryk)이다. ↩︎
- 화가(Tegneren)가 “배경(Grunden)”이라고 부르는 선(den Linie) : 아마도 화가가 자신의 그림에서 원근법(perspektiv)을 표현하기 위해 기하학적으로 표시하는 “지평선(horisonten)”을 가리킨다. 즉, 그림 속 공간감을 환영적으로(illudere) 만들어 내기 위해 사용하는 기준선이다. 이는 예를 들어 C. W. 에케르스베르(C.W. Eckersberg)의 《회화 예술에 적용된 선 원근법(Linearperspectiven, anvendt paa Malerkunsten)》(1841)에 나타난 원근법 연구와 관련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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