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성직자(Geistlig)가 세속인(Verdslig)인 척하고 방탕한 여자(letfærdigt Fruentimmer)를 찾아가 그녀와 관계를 맺으려 한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그녀가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시오. 내가 성직자인데, 이 일이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소?”
그러자 여자는 그를 여러 곳으로 데리고 다니지만, 사제(Præsten)는 어느 곳도 충분히 안전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마침내 여자가 그를 아주 외딴곳으로 데려가 말한다.
“여기서는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어요. 하나님만 빼고요.”
성직자가 말한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여기 있는 우리를 보실 수 있단 말이오? 내가 나를 보지 않기를 가장 바랐던 분이 바로 하나님이었는데!”
이 내용은 1847년 키르케고르의 일기 NB2:91에 나오는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이에 대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더 엄밀히 말해,
저 성직자에게 죄짓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죄를 안전하게 지을 장소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신다면, 인간의 눈을 완전히 피한 장소가 오히려 하나님 앞에 단독으로 서는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 일화에는 두 종류의 두려움이 대비된다.
– 사람에게 발각될 두려움: 수치심, 평판 상실, 직분 상실
– 하나님 앞에 드러날 두려움: 죄책, 양심,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성직자는 두 번째 두려움보다 첫 번째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죄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어떻게 죄를 짓지 않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죄를 지을 것인가?”에 있다. 이는 회개(Anger)의 태도가 아니라 은폐의 태도다.
▶︎ 전복된 시선의 질서
정상적인 종교적 질서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드러나는 것이 가장 결정적이고,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은 부차적이다.
그러나 성직자의 질서는 정반대다.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이 가장 위험하고, 하나님께 드러나는 것은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그는 말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세상의 시선만 실재하고 하나님의 시선은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나님은 그의 교리 안에는 있지만 그의 실존 안에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성직자가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성직자처럼 보이는 배우에 가깝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참된 신앙인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죄인 됨이 알려지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숨기고 회개하지 않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즉 핵심은 공개 고백의 범위가 아니라 어느 심판을 궁극적인 것으로 여기는가다.
➢ “죄짓기가 쉽지 않다”는 말의 역설
객관적으로는 저 성직자에게 죄짓기가 불가능할 만큼 어렵다. 하나님이 모든 곳에서 보고 계시므로, 죄를 숨길 장소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관적으로는 오히려 죄짓기가 쉽다. 그는 하나님의 시선을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사람의 시선만 현실적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만 피하면 죄도 사라진 것처럼 느낀다.
따라서 이 일화의 더 깊은 역설은 이렇다.
➢ 하나님을 실제로 믿는 사람에게는 몰래 죄지을 장소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관념으로만 믿는 사람에게는 사람의 눈을 피한 모든 곳이 죄짓기에 안전한 장소가 된다.
더구나 성직자는 세속인으로 위장하지만, 정작 벗어 버린 것은 성직자의 옷만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있는 존재라는 자기의식까지 벗어 버린다. 반대로 “방탕한 여자”로 규정된 여인이 오히려 “하나님은 보신다”는 종교적 진실을 말한다. 사회적으로 종교적인 자가 실존적으로 비종교적이고, 사회적으로 죄인 취급받는 여자가 진리를 일깨우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이것이 일화의 또 하나의 전복이다.
그러므로 결론은 다음과 같다.
➢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저 성직자가 찾는 ‘죄짓기에 안전한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시선에서 가장 멀리 벗어난 순간에도 그는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므로, 죄 자체가 아니라 죄의 발각만을 피하려 한다. 그의 위선은 하나님을 부정한다고 말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이 보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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