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이란 무엇인가?

소명은 단순히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우리는 흔히 소명을 직업과 연결해서 생각한다. 목회자가 되는 것, 선교사가 되는 것, 교사가 되는 것, 어떤 전문직을 갖는 것 등을 소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소명은 그보다 훨씬 더 깊다. 소명은 직업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존재가 변화되는 사건이다.

로마서 8장 28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를 함께 말한다. 다시 말해, 소명을 받은 자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소명은 어떤 일을 맡았다는 뜻이기 전에,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부름받았다는 뜻이다.


소명은 직업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다

성경에서 ‘부르심’은 헬라어 칼레오 계열의 단어와 연결된다. 여기에서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도 나온다. 교회란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다. 그러므로 교회는 소명을 공유하는 공동체다.

이 점에서 소명은 개인의 직업 선택보다 훨씬 크다. 소명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이기 전에, 내가 누구로 변화되느냐의 문제다. 로마서 8장 29절은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된다고 말한다. 곧 소명은 그리스도의 형상 안에서 존재가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이다.


하나님 경외에서 하나님 사랑으로

느헤미야 7장 2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예루살렘의 지도자로 세워지는 장면이 나온다. 구약에서 하나님 경외는 매우 중요한 지도자의 조건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한한 거리를 아는 것이다.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 경험하는 두려움과 떨림이 바로 경외다.

그러나 로마서 8장 28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곧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말한다. 경외가 하나님과의 무한한 거리를 아는 것이라면, 사랑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멀리 계신 분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의 하나님,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아는 것이다.

따라서 소명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통치를 삶으로 증언하도록 세상 속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기독교의 최고선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칸트에게 최고선은 덕과 행복이 일치하는 상태다. 선한 사람이 행복하고, 악한 사람이 불행해지는 상태가 최고선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한 사람이 고난을 당하고, 악한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칸트에게 최고선은 이 땅에서 완전히 실현되기 어려운 것으로 남는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최고선은 다르다. 기독교의 최고선은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난다. 모든 것이 선해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믿는 것이 기독교적 소명의 핵심이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믿는 사람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잃지 않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아직 최고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남아 있다면, 그 상실조차도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자리로 들어간다.


소명은 혁명이다

그러므로 소명은 하찮은 직업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소명은 혁명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참으로 사는 것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삶은 결국 허무로 기울어진다. 세상은 직업, 성공, 명예, 안정, 성취를 삶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기독교는 묻는다.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소명은 이 질문 앞에서 시작된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믿을 수 있느냐가 소명의 핵심이다.


매슬로우의 피라미드와 기독교 소명의 역삼각형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은 인간의 생리적 욕구가 먼저 채워져야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소명은 이 구조를 뒤집는다.

먼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는다. 그 부르심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된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해석한다. 고난도, 결핍도, 실패도, 상실도 하나님 사랑 안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그러면 이전에는 거대하게 보였던 문제가 작아진다. 두려움과 불안과 결핍이 절대적인 힘을 잃는다.

이것이 소명의 역삼각형이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인간 욕망의 구조가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인간의 삶 전체를 새롭게 해석하게 만드는 구조다.


결론: 소명은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믿는 존재 변화다

소명이란 무엇인가?

소명은 직업 선택이 아니다.
소명은 하나님께 부름받은 자가 되는 것이다.
소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소명은 그리스도의 형상 안에서 존재가 변화되는 것이다.
소명은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믿는 것이다.
소명은 그 믿음 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삶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명은 내가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먼저,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의 문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되는 것. 그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소명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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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ies: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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