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15:59, Pap. X2 A 389

실족의 가능성—단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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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크리스텐덤(Christenheden)이라 불리는 것, 곧 이 수천 명과 수백만 명의 무리는 그리스도교(Christendommen)를 완전히 허튼소리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현존하는 크리스텐덤의 정통주의(Orthodoxie) 역시 사실상 그리스도교를 이교주의(Hedenskab)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스도(Christus)는 역설(Paradoxet)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적인 모든 것은 역설의 표지를 지닌다. 다시 말해 종합(Synthesen)1으로 말미암아, 변증법적 계기인 실족의 가능성(Forargelsens Mulighed)의 표지를 지닌다.

그런데 정통주의는 이 표지를 제거한다. 특히 감동적이고 활동적인 그룬트비주의(Grundtvigianisme)가 그렇게 한다.2 그룬트비(Grundtvig)에게는 그래도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어디서나 다음과 같은 표현들을 갖다 놓는다.

“경이롭게 아름다운 것”,
“아름다운 것”,
“비할 데 없이 아름답고 심오한 것” 등.3

한마디로 모두 직접적인 범주(ligefremme Kategorier)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는 직접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성질(ligefremme Kjendelighed)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직접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그리스도는 더 이상 ‘표적’(Tegnet)이 아니다.4 그리고 그리스도를 직접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순간 그리스도교는 이교주의가 된다.

지나가는 말로 ‘표적’과 ‘실족’에 관해 어쩌다 한마디씩 섞어 넣는다 해도—그런 일조차 극히 드물지만—아무런 소용이 없다. 실족의 가능성이야말로 변증법적으로 결정적인 것, 곧 이교주의 및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가르는 ‘경계’(Grændsen)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혼란이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도교 안에서 양육된다는 사실과 연결되어 있음은 내게 분명하다. 그로 인해 모든 것이 직접적이고 순탄하게 진행되며, 저항이 밀어내는 반작용(Modstands Frastød)도 경험하지 못한다.

한편 실족의 가능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리스도교는 오직 단독자(den Enkelte)만을 상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변증법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족의 가능성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길로서, 각 사람을 다른 이들과 구별하고 고립시킨다.


주석

  1. 종합: 곧 신인(神人, Gudmennesket)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신적 본성(dен guddommelige Natur)과 인간적 본성(den menneskelige Natur)이 결합된 것을 말한다. ↩︎
  2. 그룬트비주의자들과 같은 정통주의자들
    그룬트비(Grundtvig, 14쪽 10행 참조)와 그의 추종자들은 흔히 ‘그룬트비주의자들’(Grundtvigianerne)이라고 불렸다. 그룬트비는 목사직을 사임한 뒤인 1826년에 이미 자신은 “당파를 결성하는 일”(stifte Partier)에 적합하지 않으며, “당파의 우두머리”(Parti-Høvding)가 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썼다. 『덴마크의 법률가들에게 보내는 중대한 질문』(Vigtige Spørgsmaal til Danmarks Lovkyndige, 코펜하겐, 1826) 51쪽 이하를 참조하라.
    그는 1830년대와 1840년대에 많은 추종자를 얻게 된 뒤에도 그러한 분파나 당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예를 들어 R. Th. 펭에르(R.Th. Fenger)와 C. J. 브란트(C.J. Brandt)가 편집한 『덴마크 교회신문』(Dansk Kirketidende, 제1-8권, 1845-1853, 키르케고르 소장 도서 목록 321-325번) 제107호, 1847년 10월 17일 자, 제3권(1848) 33열 이하를 참조하라.
    그룬트비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종종 ‘정통주의자들’(de Ortodokse)이라고 불렀다. 즉 자신들이 참되고 올바른 그리스도교 신앙과 교리를 지키고 대표한다고 여겼다.
    예를 들어 그룬트비는 『클라우센 명예훼손 사건에 관하여』(Om den Clausenske Injurie-Sag, 코펜하겐, 1831) 15쪽에서 자신과 추종자들을 다음과 같이 부른다.
    “극단적 정통주의자들과 옛 방식의 그리스도인들”
    (Hyper-Orthodoxerne og de gammeldags Christne)
    또한 『결여된 덴마크 교회의 자유에 관하여 국민회의에 행한 연설』(Tale til Folkeraadet om Dansk Kirkefrihed savnet, 코펜하겐, 1839) 13쪽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과도하게 정통적이라고 불리는 우리, 곧 극단적 정통주의자들”
    (os saakaldte overdrevne Rettroende, Ultra-Orthodoxer) ↩︎
  3. 경이롭게 아름다운 것 … 비할 데 없이 아름답고 심오한 것 등
    이러한 표현과 그와 유사한 표현들은 그룬트비(Grundtvig)가 자신의 저술과 설교에서 자주 사용했다. 그러나 그룬트비주의자들(Grundtvigianerne) 역시 이 표현들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문헌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
  4. 그리스도는 … ‘표징’이다
    신약성서의 근거로는 특히 누가복음 2장 34-35절을 참조하라.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2장 34-35절, 개역개정
    또한 『그리스도교의 훈련』(Indøvelse i Christendom) 제2부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성서적 진술과 그리스도교적 개념 규정」(“Salig Den, som ikke forarges paa mig.” En bibelsk Fremstilling og christelig Begrebs-Bestemmelse)에 수록된 「‘걸려 넘어짐’, 곧 본질적인 걸려 넘어짐에 관한 사유 규정」 중 제1절 「신인(神人)은 하나의 ‘표징’이다」(Gud-Mennesket er et “Tegn”)도 참조하라.
    초판 134-137쪽, 『키르케고르 전집』 제2판(SV2) 12권 145-148쪽에 해당한다.
    여기서 그리스도가 ‘표징’(Tegnet)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참된 정체가 직접적이고 자명하게 식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적 본성과 인간적 본성이 결합된 신인(Gud-Mennesket)은 겉으로 보이는 인간적 모습과 그분이 자신에 관해 선포하는 신적 정체 사이의 모순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리스도 앞에서 신앙을 선택하거나 그분에게 걸려 넘어진다. 표징은 직접적인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고 결단을 요구하는 존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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