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장 19절의 헬라어 본문은 다음과 같다.
ἐν τῇ ὑπομονῇ ὑμῶν κτήσεσθε τὰς ψυχὰς ὑμῶν.
en tē hypomonē hymōn ktēsesthe tas psychas hymōn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 개역개정
낱말과 문법
| 헬라어 | 문법 | 기본 의미 |
|---|---|---|
| ἐν | 전치사, 여격 지배 | ~안에서, ~을 통하여, ~으로 |
| τῇ ὑπομονῇ | 여성 단수 여격 | 그 인내로, 그 견딤 가운데서 |
| ὑμῶν | 2인칭 복수 속격 | 너희의 |
| κτήσεσθε | 미래 중간태 직설법 2인칭 복수 | 너희가 얻을 것이다 |
| τὰς ψυχὰς | 여성 복수 목적격 | 생명들을, 자신들을, 영혼들을 |
| ὑμῶν | 2인칭 복수 속격 | 너희의 |
문장 구조는 간단하다.
ἐν τῇ ὑπομονῇ ὑμῶν
너희의 인내 안에서/너희의 인내를 통하여κτήσεσθε
너희는 얻을 것이다τὰς ψυχὰς ὑμῶν
너희의 생명·자신·영혼을
ὑπομονή: 단순한 참을성이 아니다
ὑπομονή(hypomonē)는 흔히 “인내”로 번역되지만, 단순히 시간이 지나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태도보다 강한 말이다.
이 단어는 다음 두 요소와 관계된다.
- ὑπό(hypo): 아래에
- μένω(menō): 머물다, 견디며 남아 있다
따라서 기본적인 이미지는 압박이나 고난 아래에서도 도망하지 않고 머무는 것이다. 문맥상으로는 박해, 배신,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지속적인 견딤을 뜻한다.
그러므로 여기의 인내는 단순한 심리적 침착함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의미에 가깝다.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신실함
ἐν은 여기서 두 가지 뉘앙스를 함께 가질 수 있다.
- 수단: “너희의 인내를 통하여”
- 영역·방식: “너희의 인내 가운데서”
키르케고르의 덴마크어 I Eders Taalmodighed도 이 이중성을 잘 보존한다. 단순히 인내를 도구로 사용한다는 뜻만이 아니라, 인간이 인내라는 실존적 상태 안에서 자기 영혼을 얻는다는 뜻이다.
κτήσεσθε: ‘보존하다’보다 ‘얻다’
κτήσεσθε(ktēsesthe)는 κτάομαι(ktaomai)에서 온 미래 중간태이다.
이 동사는 다음을 의미한다.
- 얻다
- 획득하다
- 자기 소유로 삼다
- 확보하다
중간태는 단순히 어떤 대상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넘어, 그것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자기 것으로 얻는다는 뉘앙스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너희는 너희의 생명들을 너희 자신의 것으로 얻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가 “이미 가진 영혼을 지켜라”라고만 하지 않고, 역설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키르케고르가 주목한 것도 바로 이 표현이다.
인간은 자기 영혼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예수는 그 영혼을 인내를 통해 장차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영혼은 단순히 인간에게 주어진 실체가 아니라, 끝까지 견딤으로써 참으로 자기 것이 되어야 하는 실존적 과제가 된다.
본문상의 이문
고대 사본에는 동사의 형태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 κτήσεσθε
미래 중간태 직설법
“너희가 얻을 것이다.” - κτήσασθε
부정과거 중간태 명령법
“너희의 생명·영혼을 얻으라.”
현대 비평본문에는 이 두 형태가 주요 이문으로 제시된다. 누가복음 21장 19절 헬라어 본문 비교
두 형태의 차이는 한 글자다.
- κτήσεσθε: 얻을 것이다
- κτήσασθε: 얻으라
개역개정의 “얻으리라”는 미래형 κτήσεσθε를 따른 번역이다. 반면 명령형을 따르면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생명들을 얻으라.”
키르케고르의 제목 At erhverve sin Sjel, 즉 “자기 영혼을 얻는다는 것”은 어느 이문을 택하든 성립한다. 그러나 명령형으로 읽으면 영혼을 얻는 일이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Opgave)라는 성격이 더 두드러지고, 미래형으로 읽으면 끝까지 견디는 사람에게 주어질 약속(Forjættelse)이라는 성격이 더 강해진다.
키르케고르의 해석에는 두 의미가 모두 들어 있다.
“자기 영혼을 얻으라”는 과제인 동시에,
인내 가운데 “자기 영혼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ψυχή: ‘영혼’인가 ‘생명’인가
ψυχή(psychē)는 문맥에 따라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 생명
- 목숨
- 자기 자신
- 영혼
이 단어를 곧바로 플라톤적인 의미의 “육체와 분리되어 선재하는 불멸의 영혼”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성서 헬라어에서 ψυχή는 흔히 인간의 살아 있는 생명 전체 또는 그 사람 자신을 뜻한다.
누가복음 21장의 문맥에서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박해와 죽음을 예고한다.
“또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눅 21:16)
그런데 바로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눅 21:18)
일부 제자는 육체적으로 죽게 되는데도 그들의 생명은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τὰς ψυχὰς ὑμῶν은 단순히 현세의 목숨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박해와 죽음도 파괴할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의 참된 생명과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문맥을 살린 번역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너희는 끝까지 견딤으로써 너희의 참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키르케고르가 발견한 역설
헬라어 문장에서 가장 역설적인 결합은 다음 두 말이다.
κτάομαι + ψυχή
영혼·자기 자신을 얻다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얻는 주체는 이미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주체가 자기 자신, 곧 자기 영혼을 얻어야 한다. 이 때문에 키르케고르는 질문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자기 영혼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인가?”
키르케고르에게 인간은 영혼을 물건처럼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영혼을 하나님에게서 받았지만, 인내 속에서 그것을 참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고난을 잘 참으면 영혼이라는 보상을 받는다”는 단순한 교환관계가 아니다.
헬라어의 뜻을 키르케고르적으로 풀면 다음과 같다.
외적인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끝까지 견딤으로써, 인간은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자기의 참된 생명, 곧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자신을 얻게 된다.
이것은 영혼의 선재를 회상한다는 그리스적 구도보다, 시간과 시련 속에서 하나님 앞의 자기 자신이 되어 간다는 실존적·기독교적 구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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