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목적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우리는 끝까지 선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일을 시작했는데 생각만큼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현실은 더디게 움직입니다. 처음에는 기다리던 사람도 어느 순간 조급해집니다. “좋은 일을 하려는 건데, 조금 다른 방법을 써도 괜찮지 않을까?” 바로 그때, 우리는 목적만큼이나 그 목적에 이르는 길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유다형 인간’은 유다의 역사적 동기를 확정하는 설명이 아닙니다. 유다의 배신을 거울 삼아, 선을 위한다고 믿으면서도 선의 길을 끝까지 견디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가능성을 돌아보려는 묵상입니다.
선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착각
“내가 아니면 이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생각은 책임감과 열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면, 우리는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대신 완성해야 하는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걸음은 너무 느려 보입니다. 사랑은 약해 보이고, 기다림은 무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시간을 앞당기고, 내 방법으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싶어집니다. 선을 섬긴다고 시작한 일이 어느새 선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이 순서를 돌려놓습니다. 선이 나를 필요로 하기 전에, 내가 선을 필요로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십니다. 나는 구원자의 자리를 차지할 사람이 아니라, 보냄을 받은 자리에서 충성할 사람입니다.
이 고백은 우리의 삶을 하찮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결과를 내 힘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짐에서 우리를 내려놓게 합니다. 맡겨진 일을 진실하게 하되, 나 자신을 그 일의 주인으로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충성은 폭풍보다 오래 부는 바람을 닮았습니다
우리는 거센 폭풍을 보며 힘을 느낍니다.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흔드는 모습이 열정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방향으로 오래 부는 바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랜 세월 그 바람을 맞은 나무에는 방향의 흔적이 남습니다.
충성도 그렇습니다. 한순간 얼마나 뜨거웠는가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흘렀을 때에도 같은 선을 향하고 있는지,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사랑과 정직함을 버리지 않는지에서 드러납니다.
결과가 늦어져도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인정받지 못해도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 눈에 띄는 성과가 없어도 사랑을 거두지 않는 것. 이런 한결같음은 요란하지 않지만, 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을 지닙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을 생각하면 열정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열정은 반드시 서두르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끝까지 사랑하기 때문에 오래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소명은 일상의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소명을 말할 때 우리는 먼저 특별한 직업이나 커다란 결단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소명은 지금의 가정과 일상을 떠나야만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상 한가운데서도 보냄을 받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직업의 이름만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입니다. 가족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지, 함께 일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우리의 소명을 드러냅니다.
눈에 띄는 결과가 나왔다고 소명이 증명되는 것도, 성과가 더디다고 소명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소명을 결과로만 판단하면 우리는 계속 자신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충성으로 바라보면 오늘 해야 할 일이 보입니다. 바로 오늘의 자리에서 선한 길을 지키는 일입니다.
좋은 목적에는 좋은 길이 필요합니다
목적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좋은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을 전하려고 사람을 모욕하고, 진리를 지키려고 정직함을 버린다면, 목적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그 목적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충성은 결과만 묻지 않습니다. “얼마나 이루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그것을 이루어 가는 동안, 너는 선한 길에 머물렀는가?”를 묻습니다.
순종은 성공한 뒤에 완성되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 선택하는 말과 방법 속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목적이 멀리 있다는 이유로 오늘의 불의를 허락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이 목적이라면 지금 사랑하는 방식으로 걸어야 하고, 진리가 목적이라면 지금 정직한 방식으로 걸어야 합니다. 수단은 목적에 도착한 뒤 버릴 사다리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삶의 모습입니다.
인내는 선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6절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인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보내는 태도와 다릅니다.
우리는 때로 원하지 않는 어려움 속에 놓입니다. 모든 상황을 즉시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상황이 내 말과 행동의 주인이 되게 할 것인지는 다시 물을 수 있습니다. 고난 때문에 정직함을 버리지 않고, 상처를 받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같은 상처를 돌려주지 않는 것. 인내에는 이런 능동적인 용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당함을 방치하거나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고 도움을 구하면서도, 조급함 때문에 선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내는 현실에서 물러나는 일이 아니라, 그 현실 속에서도 삶의 방향을 지키는 일입니다.
보낸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삶
잠언 25장 13절은 충성된 사자를 추수하는 날의 시원한 냉수에 비유합니다. 그 사람은 자신을 보낸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충성의 아름다움은 거기에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 주는 대신, 맡겨진 뜻을 진실하게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시원하게 할 수 있을까요? 가족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일터에서 지키는 정직함, 눈에 띄지 않는 사람에게 내어 주는 시간 속에서 그 충성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다형 인간’이라는 질문은 멀리 있는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말이 아닙니다. 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선의 길을 기다리지 못하는 내 마음을 향한 질문입니다. 오늘 필요한 것은 더 거센 열정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선을 끝까지 지키는 인내일지도 모릅니다.
선을 빨리 이루는 것보다 먼저, 선한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이번 한 주, 그 작은 충성을 함께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의 묵상
- 나는 지금 무엇이 늦어진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 그 조급함 때문에 정당화하고 있는 말이나 행동은 없습니까?
- 오늘 내 자리에서 지킬 수 있는 작은 충성은 무엇입니까?
주님, 결과를 서두르다가 선한 길을 잃지 않게 하소서. 오늘 맡겨진 자리에서 사랑과 정직함을 지킬 인내를 주소서.
이 글은 카리스아카데미 설교 ‘유다형 인간’을 바탕으로 읽기 쉽게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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