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려는 제국과 기억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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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는 『사랑의 실천』의 서문 초고에서 매우 흥미로운 비유를 제시합니다. 그는 “동방의 한 위대한 황제”를 언급하면서, 그 황제가 자신의 수많은 업적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하여 많은 서기관들을 거느리고 다녔다고 말합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역사』에서 묘사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Xerxes)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 원정을 앞두고 자신의 막대한 육군과 해군을 직접 시찰하였으며, 그 모든 상황을 서기관들에게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제국은 자신의 위대함을 기록으로 남기기를 원하였고, 기록은 곧 권력과 영광을 보존하는 수단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크세르크세스가 성경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아하수에로 왕과 동일한 인물로 이해된다는 사실입니다. 에스더서는 이 왕이 인도에서 구스에 이르기까지 127도를 다스리는 제국의 통치자였음을 소개하며(에 1:1), 그의 권세와 영광을 드러내는 대규모 잔치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에스더서의 첫 장면은 제국이 자신의 영광을 과시하는 장면이며, 헤로도토스가 묘사한 크세르크세스의 모습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따라서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동방의 위대한 황제”는 단순한 역사적 예화를 넘어, 성경 독자에게는 에스더서의 왕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가 강조하려는 핵심은 황제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 황제와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본질적인 차이입니다. 황제는 자신의 업적을 남기기 위하여 서기관을 필요로 하지만, 사랑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사랑이 “자신의 행위들에 대하여 경건하게 알지 못한 채 머문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자신의 선행을 기억하지 않으며, 더욱이 그것을 기록하거나 자랑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은 자기 자신을 잊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서기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잊어버리는 것을 기록하려는 순간, 사랑은 이미 자기 자신을 주장하는 다른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에스더서는 매우 흥미로운 신학적 대조를 보여 줍니다. 에스더서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은 왕의 역대 일기를 읽는 사건입니다. 왕은 잠이 오지 않는 밤에 궁중의 기록을 읽게 하고, 그 기록 속에서 모르드개가 자신의 생명을 구하였음에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에 6:1-3).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르드개가 자신의 공로를 주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의 선행을 기억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자신을 높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사랑처럼 자신의 행위를 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왕의 불면조차도 섭리 가운데 사용하셔서, 잊혀졌던 사랑을 가장 적절한 때에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반대로 하만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기억하게 하려는 사람입니다. 그는 왕의 존귀를 자신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모든 사람이 자신 앞에 무릎 꿇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대표합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영광으로 기억되지 않았고, 오히려 교만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에스더서는 결국 두 종류의 기억을 대조합니다. 하나는 인간이 스스로 남기려는 기억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기억입니다.

이 점에서 키르케고르의 통찰은 에스더서와 깊이 연결됩니다. 제국은 기록을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보존하려 하지만, 사랑은 자신의 행위를 망각합니다. 제국은 서기관을 필요로 하지만, 사랑은 서기관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자신의 행위를 잊는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잊지만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사랑은 자기 자신을 기록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당신의 기억 속에 간직하십니다.

이러한 관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도 일치합니다. 예수께서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 6: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선행을 은밀하게 행하라는 윤리적 권면을 넘어, 사랑은 본래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고 선언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사랑을 기억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것을 잊지 않으십니다.

결국 이교적 제국과 그리스도교의 차이는 단지 영광을 추구하는 방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대하는 방식에도 있습니다. 제국은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새기려 하고, 자신의 업적을 기록하여 영광을 영속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사랑은 자신의 이름을 지우며, 자신의 행위를 잊습니다. 인간은 기억되기를 원하지만, 사랑은 잊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잊혀진 사랑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십니다. 이것이 에스더서가 보여 주는 하나님의 섭리이며, 동시에 키르케고르가 『사랑의 실천』에서 말하고자 한 사랑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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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ies: 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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