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10:136, Pap. XI A 217

NB10:136, Pap. XI A 217, n.d., 1849 기독교(Christend.)에 대한 오직 하나의 일관된(consequent) 이해(Opfattelse)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진리(Sandheden)를 위하여 맞아 죽는 것(ihjelslagen), 곧 순교자(Martyr)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좋다, 될 수 있으면 더 빨리!”(Huhei, jo før jo hellere) 같은 방식이 아니라, 섬기는 Read more

By truththeway, ago

NB30:107, Pap. XI1 A292, 자살에 대하여

NB30:107, Pap. XI1 A 292, n.d., 1854 자살(Selvmordet) 바로 기독교적으로(christeligt) 이 존재(Tilværelse, 삶)가 형벌의 고난(Strafs-Lidelse)이기 때문이며, 또 기독교가 마지막 고난, 곧 죽음(Døden)을 견디어 낸 이후에는 복된(salig), 영원히 복된(evig salig) 존재(Tilværelse)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제멋대로(selvraadigt) 이 존재(Tilværelse)에서 Read more

By truththeway, ago

NB30:87, 자살에 대하여

NB30:87, Pap. XI1 A 269, n.d., 1854 의심스러운 것(Et Mistænkeligt)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성경(Den hellige Skrift)은 본래 자살(Selvmord)에 대해 어떤 명확한 금지도 담고 있지 않고, 중요한 성격 철학자(Charakteer-Philosopher)들 역시 그것을 허용하거나 심지어 찬양하기까지 하며, 또 내가 알기로 어떤 이교 종교(hedensk Read more

By truththeway, ago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가장 위험한 착각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가장 위험한 착각 ― 키르케고르의 산파술과 한국 교회 ― 키르케고르는 평생 이상한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누구보다 철저하게 설명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소크라테스적 전략이었습니다. 관련 일기는 Read more

By truththeway, ago

성령은 왜 위로자인가?

성령은 왜 ‘위로자(Trøsteren)’인가 ― 고난 없는 축복을 추구하는 시대 속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 가장 강력하게 소비되는 언어 중 하나는 “축복”이다.잘되는 삶, 형통한 삶, 건강한 삶, 안정된 삶, 성공하는 삶. 우리는 종종 이것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기도가 응답되고, 일이 Read more

By truththeway, ago

성령은 위로자, NB26:40, Pap. X4 A588

NB26:40, Pap. X4 A588 성령(Hellig-Aand)은 “위로자(Trøsteren, 보혜사)”이다―죽는 것(at afdøe)―거듭남(at gjenfødes) 왜 성령(Hellig-Aand)은 “위로자(Trøsteren, 보혜사)”라고 불리는가? 아주 단순하다. 만일 하나님과 관계 맺고 있다는 표적(Kjendet),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표적이, 모든 일이 내게 잘되는 것(Alt lykkes mig)이라면, 나는 나를 위로할 어떤 영(Aand)도 Read more

By truththeway, ago

성령에 대하여 NB15:114, Pap. X2 A451, 1850

NB15:114, Pap. X2 A451, 1850 「성령(Hellig-Aand)」   “성령(Den Hellig-Aand)”은 “보혜사(Trøsteren, 위로자)”라고 불린다.이 이름 때문에 사람들은, 성령이 제자들 그리고 계속해서 그리스도인들(Christne)을 위로하는 것은 그리스도(Christus)께서 떠나셨고 더 이상 그들 가운데 눈에 보이게 계시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Read more

By truththeway, ago

성령에 대한 키르케고르 일기 자료 모음

1651, FF:128, Pap. II A 731 성령은 ‘나’와 3인칭(객관적 세계, 실존의 영역)을 포함하는 신적인 ‘우리’이다. 이 두 주체의 있다는 사실로 인해 복수(plural)가 된다. 1인칭이 있다는 사실로 인해, (객관적 3자나 대상보다) 우선권이 부여된다는 점에서 ‘우리’이다. 1838년 4월 23일 NB7:78, IX A Read more

By truththeway, ago

레싱과 가발 이야기 해설

관련하여, 다음 링크의 글도 참고하십시오. “결론의 비학문적 후서” 제2부 제1섹션 제1장에서 키르케고르(정확히는 클리마쿠스)는 “가발(Parykken)” 이야기를 통해 단순히 레싱(Lessing)의 문체를 비꼬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깊은 문제, 곧: 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이것은 후서 전체의 핵심 주제인 “역사적 사실로부터 어떻게 Read more

By truththeway, ago

결론의 비학문적 후서 제2부 2섹션 제1장 해설

관련하여, 다음 링크의 글도 참고하십시오. 이 장에서 요하네스 클리마쿠스(Johannes Climacus)가 핵심적으로 말하려는 것은, 종교적인 것(Det Religieuse), 특히 기독교(Christendommen)의 진리는 객관적(objektiv) 체계나 세계사적(worldshistorisk) 진보 속에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단독자(Den Enkelte)의 주관성(Subjektivitet) 안에서만 실존적으로 관계 맺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 Read more

By truththeway, ago

Subscribe to our Newsletter

사유로 시작된 글이 삶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카리스아카데미의 칼럼과 강좌 소식을 이메일로 받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