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국제 키르케고르 학회 참관기
“Readings of Kierkegaard” – 세계 키르케고르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2026년 6월 15일부터 19일까지 미국 미네소타주 노스필드(Northfield)에 위치한 세인트 올라프 칼리지(St. Olaf College)에서 제10회 국제 키르케고르 학회(The Tenth International Kierkegaard Conference)가 개최되었다. 이번 학회는 홍 키르케고르 도서관(Hong Kierkegaard Library)이 주최하였으며, “Readings of Kierkegaard”를 주제로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이 모여 키르케고르 연구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홍 키르케고르 도서관은 약 2만 권에 이르는 자료를 소장한 세계적인 키르케고르 연구기관으로, 매년 여름 국제 연구자들이 모이는 키르케고르 서머 인스티튜트(Kierkegaard Summer Institute)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국제학회 역시 그 프로그램의 핵심 행사로 진행되었다.
개회 강연: 키르케고르 저작의 ‘비밀 쪽지’
학회 첫날인 15일 저녁에는 개회 만찬과 함께 조지 W. 유텍 기념 강연(George W. Utech Memorial Lecture)이 열렸다. 드렉셀대학교(Drexel University)의 철학자 M. G. Piety 교수는 「The Secret Note: Unraveling the Central Mystery of Kierkegaard’s Authorship」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며, 키르케고르가 자신의 일기에서 언급한 ‘비밀 쪽지(secret note)’의 의미를 추적하였다. 이 강연은 키르케고르 저작 전체를 해석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참석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다양한 주제로 펼쳐진 국제 학술 발표
16일부터 18일까지 이어진 본회의에서는 생태학, 정치철학, 신학, 종교철학, 심리학, 미디어 연구, 문학, 존재론, 윤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키르케고르를 새롭게 읽으려는 시도들이 발표되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주제들이 주목을 받았다.
- 생태학 시대의 백합과 공중의 새 읽기
- 능력주의 사회 속에서의 감사와 은총
- 세속화와 기독교의 관계
- 디지털 미디어와 AI 시대의 진정성
- 니힐리즘과 절망의 문제
- 사랑과 고난의 실천
- 존재론과 타자성 문제
- 권태(boredom)와 해석학적 방법론
이번 학회는 키르케고르를 단순히 역사적 사상가로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가 직면한 실존적·윤리적 문제들을 해석하는 중요한 사상적 자원으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녔다.

한국 연구자들의 참여
이번 학회에는 한국 연구자들도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최정인 박사(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Korea Kierkegaard Research Center)는 「Coram Deo: From Luther to Kierkegaard, through Nietzsche, and Back Again」을 발표하며 루터와 키르케고르, 니체를 연결하는 신학적 해석을 제시하였다.

오재하 박사(Evangelia University)는 「Kierkegaard’s Anti-Lutheran Christianity in Philosophical Fragments」를 발표하며 『철학의 부스러기』에 나타난 키르케고르의 기독교 이해를 분석하였다.
또한 한국키르케고르연구소의 이창우 목사는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Kierkegaard’s Ecclesiology of Saeng-Existence: A Dialectical-Phenomenological Study on the Becoming and Spiritual Formation of the Inward Church」를 발표하였다. 이 발표는 키르케고르의 교회론을 ‘생존재(Saeng-Existence)’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재해석하면서, 제도적 교회를 넘어 ‘내면의 교회(Inward Church)’라는 새로운 교회론적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발표 후에는 여러 연구자들과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으며, 키르케고르 교회론의 급진성과 현대적 의의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사진 5. 이창우 박사 발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로버트 오 박사의 발표
이번 학회에서 특히 많은 관심을 받은 발표 가운데 하나는 한국키르케고르연구소의 로버트 오(Robert Oh) 박사의 발표였다. 오 박사는 「K-Philosophy and Kierkegaard: Asian Readings on Faith, Suicide, and the Hope of Love」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며, 서구 중심의 키르케고르 해석을 넘어 아시아적 맥락에서 키르케고르 사상을 새롭게 읽어내는 시도를 선보였다.
그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자살 문제와 절망의 문제를 키르케고르의 실존철학과 연결하여 분석하는 한편, K-철학(K-Philosophy)이라는 새로운 담론을 통해 신앙과 사랑의 희망을 제시하였다. 특히 K-pop과 현대 대중문화를 단순한 문화 현상이 아니라 실존적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로 해석하며, 키르케고르 사상이 현대 한국 사회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발표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서구와 아시아 문화의 관계, 종교의 역할, 현대인의 절망과 희망의 문제를 둘러싼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으며, 여러 연구자들은 이번 발표가 키르케고르 연구의 지평을 유럽 중심 해석에서 세계적·문화적 해석으로 확장하는 중요한 시도라고 평가하였다.
특히 키르케고르 연구가 철학과 신학의 경계를 넘어 문화와 예술, 그리고 현대 사회 문제와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번 학회의 가장 인상적인 발표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학문과 우정이 만나는 공동체
국제학회의 특징은 단순한 연구 발표에만 있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식사와 리셉션, 토론, 공연 등을 통해 서로의 연구를 공유하며 국제적인 학문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특히 무용가 이리나 크루치니나(Irina Kruchinina)의 「Leaps in Place」 공연은 키르케고르의 ‘신앙의 도약’을 몸짓으로 표현하며 참가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홍 키르케고르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연구 펠로우십, 덴마크어 과정, 국제학술지(IJKR) 등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지면서 젊은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연구 기회가 제공되었다.

미래를 향한 키르케고르 연구
이번 제10회 국제 키르케고르 학회는 키르케고르 연구가 여전히 살아 있는 학문적 전통임을 보여주었다. 절망, 불안, 신앙, 사랑, 공동체, 주체성, 디지털 사회 등 현대인이 직면한 문제들 속에서 키르케고르의 사상은 여전히 새로운 해석과 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사유하고 토론한 이번 학회는 키르케고르 연구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앞으로도 한국 키르케고르 연구가 세계 학계와 긴밀히 소통하며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소중한 자리였다.
무엇보다 현재 키르케고르 연구를 위해 방문한 양성진, 현주옥 목사님과의 교제는 향후 한국키르케고르연구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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