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의 목사 비판과 교회의 본질

쇠렌 키르케고르가 덴마크 교회를 비판할 때 가장 자주 사용한 표현 가운데 하나는 “목사는 공무원(Embedsmand)이다”1라는 말이었다. 이 표현은 단순한 수사적 비판이 아니라 당시 덴마크의 교회 구조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19세기 덴마크에서 교회는 국가와 분리된 공동체가 아니라 국가의 제도 속에 포함된 조직, 곧 국가교회(Statskirke)였기 때문이다.

국가교회란 국가가 법적으로 특정 교회를 자신의 교회로 선언하고 그 교회의 신앙과 교리를 국가의 공식 종교로 인정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이러한 체제 아래에서 국가는 해당 교회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지만 동시에 교회에 대한 일정한 통제권도 행사한다. 덴마크에서는 복음주의 루터교회가 국가교회였으며, 국왕이 교회의 수장이었다. 주교와 감독, 그리고 목사들은 국왕에 의해 임명되는 국가 공무원이었고, 덴마크의 모든 국민은 원칙적으로 루터교 신앙고백서인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에 의해 신앙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교회는 점차 하나의 제도적 질서로 기능하게 되었고, 목회는 영적 소명이라기보다 국가 직무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상황을 두고 키르케고르는 깊은 신학적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는 한 일기에서 교회와 국가의 본질적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회는 본래 ‘생성(Vorden)’을 대표해야 하며, 국가는 ‘기성 질서(Bestaaen)’를 대표해야 한다.2

이 짧은 문장은 키르케고르의 교회 이해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진술 가운데 하나이다. 국가의 본질은 이미 형성된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다. 국가는 안정과 지속을 목표로 하며, 이미 존재하는 제도를 쉽게 폐지하거나 급격히 개혁하지 않는다. 어떤 제도가 다소 불완전하더라도 그것이 사회 질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면 국가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는 “기성 질서(Bestaaen)”의 원리에 의해 작동한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은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한다. 교회는 이미 형성된 질서를 유지하는 기관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가 생성되는 사건, 곧 “생성(Vorden)”의 영역에 속한다. 교회 안에서는 인간이 그리스도와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존재로 변화하며, 바로 이 변화의 사건 속에서 신앙이 탄생한다. 교회는 제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곳이 아니라 존재가 새롭게 형성되는 영적 공간이다.

따라서 교회와 국가가 서로 결합하여 동일한 구조로 작동하기 시작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국가의 원리인 “기성 질서”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교회는 더 이상 존재의 생성이 일어나는 장소가 아니라 단순히 유지되어야 할 사회 제도가 된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 키르케고르가 “크리스텐덤(Christenheden)”이라고 부른 현실이었다.

국가교회 체제에서는 사람이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세례를 받고, 세례를 받으면 곧 기독교인이 된다. 신앙은 더 이상 개인의 결단이나 존재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소속으로 결정된다. 결과적으로 기독교는 실존적 사건이 아니라 출생과 동시에 부여되는 종교적 신분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장 큰 긴장은 목사의 존재에서 드러난다. 왜냐하면 목사는 본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국가교회 체제에서는 동시에 국가가 임명한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가 보기에 이 두 역할은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국가 공무원은 질서를 유지하는 사람이며 사회적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람은 때로 사회 질서를 뒤흔들고 기존의 안정성을 깨뜨리는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목사를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과연 그는 그리스도의 증인인가, 아니면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 공무원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제도 비판이 아니라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었다. 만약 목사가 안정된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 공무원이라면 그는 십자가를 증언하는 존재가 될 수 없다고 키르케고르는 보았다. 십자가는 인간을 안전한 삶에서 끌어내어 결단의 자리로 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사역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급진적인 말을 남긴다. 교회의 사역자는 공무원이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expediti”,3 곧 모든 짐을 벗어던지고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이 표현은 로마 군대에서 사용되던 말로, 불필요한 장비를 내려놓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병사를 가리킨다. 키르케고르는 바로 이러한 존재적 자유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때, 키르케고르의 교회 이해는 제도적 교회론과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교회는 조직이나 제도 이전에 존재가 새롭게 생성되는 사건이며, 신앙은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 실존적 결단 속에서 탄생한다. 따라서 교회의 진정한 의미는 국가가 인정하는 종교 제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발견하는 순간 속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키르케고르가 크리스텐덤을 향해 던진 가장 급진적인 선언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한때 이렇게 말했다.

덴마크에는 기독교인이 한 사람도 없다.4

이 말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그의 교회 이해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기독교가 사회적 제도로 유지될 때, 신앙은 더 이상 존재의 생성이 아니라 단순한 문화적 전통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키르케고르가 찾고자 했던 교회는 국가 제도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존재의 생성으로서의 교회였다. 교회는 이미 완성된 질서를 유지하는 기관이 아니라, 인간이 그리스도 앞에서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주석

  1. NB12:13 ↩︎
  2. Ibid. ↩︎
  3. expediti: 라틴어 expeditus의 복수형으로, ‘방해받지 않는’, ‘구속되지 않은’이라는 뜻이다. 즉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존재들을 의미한다. ↩︎
  4. The Attack upon Christendom에서, 키르케고르는 덴마크 사회 전체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덴마크에는 수백만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기독교인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이 말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기독교인이라 불린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없다. 따라서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크리스텐덤(Christenheden)’이다. 그의 유명한 명제는 바로 이것이다.
    “Christendom has abolished Christianity.”
    크리스텐덤이 기독교를 폐지해 버렸다. ↩︎

0 Comments

Leave a Reply

Avatar placeholder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