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키르케고르의 수단과 목적
— 도덕적 형식주의에서 실존적 생성(Tilværelse)으로
1. 서론
수단과 목적의 관계는 오랫동안 도덕철학의 중심 문제였다. 공리주의가 행위의 결과를 기준으로 윤리적 가치를 판단하는 데 반해, 임마누엘 칸트는 도덕을 동기의 순수성과 보편적 도덕 법칙 위에 정초하고자 하였다. 이에 비해 쇠렌 키르케고르는 수단과 목적의 구분 자체를 실존적 생성의 행위 속에서 해체하며, 전혀 다른 차원의 윤리를 제시한다.1
본 절은 칸트가 결과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여전히 형식적이고 보편적인 윤리 구조 안에 머무는 반면, 키르케고르는 윤리적 현실을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den Enkelte)의 내면적·시간적·결단적 생성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을 논증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키르케고르는 단순히 수단을 목적보다 우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수단과 목적이 존재(Tilværelse) 안에서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2. 칸트: 형식적 구조 안에서의 동기의 우선성
칸트의 윤리는 행복이나 유용성으로 선을 환원하는 목적론적 윤리학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칸트에 따르면 행위의 도덕적 가치는 결과가 아니라 동기, 곧 “의무로부터” (aus Pflicht) 행위하는 데 있다.2
정언명령은 보편적 도덕 법칙으로서, 자신이 따르는 준칙이 보편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위할 것을 요구한다.3 이는 두 가지 핵심 특징을 지닌다:
- 형식적 보편성 – 모든 도덕 행위는 보편화 가능해야 한다.
- 동기의 순수성 – 선의지는 무조건적으로 선한 유일한 것이다.4
이 점에서 칸트는 분명히 “수단”에 해당하는 요소—즉 행위를 규정하는 원리—를 중요하게 본다. 그러나 이 수단은 실존적인 것이 아니라 형식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다. 그것은 실제 삶 속에서의 구현이 아니라 보편 법칙과의 합치 여부에 의해 판단된다.
따라서 칸트는 수단과 목적을 동일시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구조화한다:
- 목적: 도덕 법칙을 통해 실현되는 선
- 수단: 의무에 따라 보편화 가능한 준칙으로 행위하는 것
이 둘은 밀접하게 연결되지만, 여전히 구분된 채로 남는다.
3. 키르케고르: Tilværelse(존재) 안에서의 수단과 목적의 동일성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형식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넘어선다. 《마음의 청결》에서 윤리적 요구는 보편 법칙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통일성이다:
“한 가지를 품는 것(의지하는 것)”은 곧 “진리 안에서 선을 품는 것(의지하는 것)”이다.
이 통일성은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실존적 결단(Afgørelse)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서 수단과 목적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전환된다:
“영원적으로 이해하면 수단은 하나이며, 목적도 하나이다. 수단과 목적은 하나이며 동일하다.”5
이 명제는 칸트의 틀 안에서는 이해될 수 없다. 키르케고르에게서:
- 윤리는 보편성에 근거하지 않고 내면성(Inderlighed)에 근거한다.
- 핵심 범주는 법칙이 아니라 존재(Tilværelse)다.
- 인간은 이성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다.
따라서 수단은 더 이상 목적을 향한 방법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목적의 실현이다. 진리 안에서 행위하는 순간, 그 행위는 이미 목적에 도달한 것이다.
4. 도덕 법칙에서 실존적 생성으로
칸트와 키르케고르의 차이는 시간과 현실성에 대한 이해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4.1 칸트: 윤리적 형식주의
칸트 윤리는 초월적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
- 도덕 법칙은 시간과 무관하게 보편적이다
- 주체는 이를 개별 상황에 적용한다
- 윤리적 정당성은 형식적 일관성에 의해 결정된다
즉, 윤리적 행위는 이성적 매개를 통해 이루어진다.
4.2 키르케고르: 실존적 시간성
반면 키르케고르는 윤리를 순간(Øieblikket) 속에 위치시킨다:
- 영원이 시간 안으로 침투한다
- 개인은 결단해야 한다
- 진리는 존재 안에서 현실화된다
여기서 윤리적 행위는 매개되지 않고 실존적으로 생성된다. 행위는 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선이 Tilværelse(존재)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5. 목적론과 수단주의에 대한 비판
키르케고르의 “수단=목적” 명제는 모든 형태의 수단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작용한다:
- 공리주의에 대하여: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 칸트에 대하여: 수단은 단순한 형식적 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유일한 참된 수단은 선 그 자체이며, 그것을 의지하는 순간 이미 목적에 도달한 것이다.
이로써 노력과 성취 사이의 시간적 간극은 사라진다. 윤리는 미래의 성취가 아니라, 현재의 존재 방식이 된다.
6. Tilværelse(존재)와 내면의 교회에 대한 함의
이 통찰은 본 연구에서 전개하는 Tilværelse 개념의 핵심을 이룬다. 존재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 윤리적 행위는 외적 기준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 그것은 내면에서 구성된다
- 그것은 세대마다 반복된다
이것은 교회론 또한 재구성한다. 교회는 제도나 역사적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리 안에 존재가 형성되는 내면의 교회이다.
7. 결론
칸트는 결과주의를 비판하며 동기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그의 윤리는 여전히 형식적이고 보편적인 구조에 머문다. 반면 키르케고르는 윤리를 존재 자체 안으로 급진적으로 이동시킨다.
수단과 목적의 구분은 단순히 재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해체된다:
참된 결단의 순간, 수단은 곧 목적이며, 목적은 현재 안에 현존한다.
이것은 도덕철학에서 실존신학으로의 전환이다. 법칙에서 삶으로, 보편성에서 단독자로, 추상에서 Tilværelse(존재)로의 전환이다.
각주
- 이 부분에 대하여는 키르케고르의 ⟪마음의 청결⟫, 282-3쪽을 참고하라. ↩︎
- 임마누엘 칸트, 《도덕형이상학 기초정립》, 4:397. ↩︎
- 같은 책, 4:421. ↩︎
- 같은 책, 4:393. ↩︎
- ⟪마음의 청결⟫, 28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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