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이르는 병은 왜 ‘영의 병’인가?
― 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제1부 A장 A절 해설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은 단순히 인간의 우울이나 심리 상태를 분석하는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인간 존재 자체를 해부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첫 문장부터 그는 매우 급진적인 선언을 합니다.
“절망은 영의 병, 곧 자기의 병이다.”
기존 번역서들은 대부분 “정신의 병”이라고 번역했지만, 여기서 키르케고르가 사용한 개념은 단순한 심리학적 의미의 정신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 안에 있는 가장 깊은 차원, 곧 “영(Spirit)”의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키르케고르는 인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인간은 유한과 무한, 시간과 영원, 자유와 필연의 종합이다.
인간은 단순한 육체도 아니고 단순한 정신도 아닙니다. 인간은 서로 다른 요소들이 긴장 속에서 결합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두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키르케고르는 말합니다.
“자기(Self)란 관계가 스스로를 관계하는 것이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철학, 과학, 역사, 정치, 경제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축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지식은 오히려 우리 자신으로부터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이것을 “기만”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객관적 지식보다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반성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것이 바로 《결론의 비학문적 후서》에서 말하는 “이중 반성”의 핵심입니다.
절망은 왜 발생하는가?
키르케고르는 자기(Self)가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세운 존재인가?
둘째, 인간은 어떤 타자에 의해 세워진 존재인가?
여기서 기독교적 전제가 등장합니다.
키르케고르에게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만든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자기(Self)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절망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절망은 단순히 슬픔이나 우울이 아닙니다. 절망은 하나님 없이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는 절망을 세 가지 형태로 설명합니다.
- 자기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절망
- 자신이 되기를 원치 않는 절망
- 자신이 되기를 원하는 절망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 절망입니다. 보통 우리는 “자기 자신이 되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그것이 하나님 없이 자기 자신을 세우려는 시도라면 가장 깊은 절망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정립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극복한 자기(Self)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자신과 관계하면서 자신이 되기를 원할 때, 그 자신을 정립한 능력 안에서 투명하게 자신의 근거를 둔다.”
여기서 핵심은 “근거”입니다. 인간의 자기는 자기 자신 위에 세워질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자기 존재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이르는 병》은 단순한 철학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존재론적 기독교 저작입니다. 절망은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의 기반이 흔들리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키르케고르는 묻습니다.
당신은 과연 무엇 위에 자기 자신을 세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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