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로서의 서문

이 서문은 일종의 아이러니로 해석해야 합니다. 다만 골트칼프의 비유는 ‘떠들썩하게 입성하는 유명인’보다는 ‘엉뚱한 사람을 위대한 인물로 오인하여 호들갑스럽게 환영하는 사건’에 가깝습니다.

하이베르의 희극 《솔로몬 왕과 모자 장수 예르겐》에서는 사람들이 프랑크푸르트의 부유한 골트칼프 남작이 코펜하겐으로 온다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남루한 유대인 행상인 살로몬 골트칼프가 나타나자,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그를 남작으로 착각하여 성대한 환영을 벌입니다. 즉, 살로몬 골트칼프는 실제 거물이 아니라 거물로 오인된 초라한 인물입니다. Philosophiske Smuler_주석자료.pdf

키르케고르는 이 희극적 오인을 자기 책에 적용합니다.

설마 누군가 이 작은 ‘철학적 부스러기’를 세계사적 저작으로 떠받들고, 그 저자를 코펜하겐이 기다려 온 위대한 체계 철학자로 착각하지는 않겠지?

여기서 ‘체계적인 살로몬 골트칼프’는 의도적인 모순이자 희화화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완성된 철학적 체계(Systemet)를 가져온 거물이 아니라, 고작 하나의 부스러기(Smule), 작은 소책자(Piece)를 내놓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를 새로운 철학 시대를 여는 체계 철학자로 떠받든다면, 그것은 남루한 행상인을 부유한 남작으로 오인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앞의 디오게네스 일화도 이 의미를 강화합니다. 도시 사람들이 전쟁 준비로 바쁘자 디오게네스는 자신도 게으르게 보이지 않으려고 아무 쓸모 없이 통을 굴립니다. 저자 역시 자신을 그런 사람처럼 묘사합니다.

  • 철학자들은 세계사적 의미를 가진 ‘체계’를 세우느라 분주합니다.
  • 자신은 그 대열에 끼지 못하는 한가한 사람(Lediggænger)입니다.
  • 그래도 완전히 놀고만 있을 수 없어, 디오게네스가 통을 굴리듯 작은 ‘부스러기’를 내놓습니다.
  • 그러나 그 통 굴리기를 도시를 구원하는 대사업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체계 철학자들은 떠들썩하지만 부스러기의 저자는 한가하고 비중 없는 사람처럼 등장합니다. 다만 골트칼프는 체계 철학자들의 떠들썩한 입성 자체라기보다, 그처럼 초라한 저자를 ‘기다리던 체계의 구세주’로 잘못 알아보고 떠들썩하게 환영하는 독자들의 오해를 나타냅니다.

뒤의 “시대(Æra), 기원(Epoche), 체계(Systemet)”라는 반복은 당시 헤겔주의자들의 거창한 역사철학적 언어를 조롱합니다. 무엇만 나오면 “새 시대가 열렸다”, “철학사의 새로운 기원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체계가 완성되었다”고 합창하는 사람들은 철학적으로 고양된 것이 아니라, 상식이 빠져나갈 때까지 구호를 외쳐 대는 집단적 광란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락의 아이러니는 두 방향입니다.

  1. 저자는 자기 책을 일부러 하찮은 ‘통 굴리기’로 낮춥니다.
  2. 동시에 모든 철학적 저작을 ‘새 시대를 여는 체계’로 포장하는 당시의 지적 허영을 훨씬 더 신랄하게 낮춥니다.

결국 “내 책은 거대한 체계가 아니다”라는 겸손한 말투를 취하면서, 바로 그 말투를 통해 체계를 자처하는 철학계의 과장과 소동을 공격하는 서문입니다.

왼쪽은 작은 종이 부스러기를 들고 통을 굴리는 겸손한 저자, 오른쪽은 평범한 골트칼프를 위대한 인물로 오인해 환영하는 군중, 뒤편의 거대한 빈 골조는 과장된 철학적 ‘체계(Systemet)’를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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