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이 가리키는 부분은 포이어바흐가 기독교를 비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진정한 기독교’와 당대의 무기력한 기독교를 선명하게 대비시키는 대목들이다. 여기서 쪽수는 1843년 라이프치히 제2판 기준이다. 이 판본은 총 522쪽이다. 1843년 판본 정보

  • iii쪽: 초판 서문
  • xii–xiii쪽: 1843년 제2판 서문
  • 275–413쪽: 본문 후반부—개인적 불멸, 종교의 모순, 계시·삼위일체·성례·신앙과 사랑의 모순 등에 관한 논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학은 실제로 인간학이다

포이어바흐의 중심 명제는 “신학의 비밀은 인간학(Anthropologie)이다”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성·의지·사랑·완전성 같은 본질적 속성을 외부로 투사하여 하나님이라는 객관적 존재로 만든다. 따라서 하나님에 관해 말하는 것은 실제로는 인간 자신의 본질에 관해 말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시의 기독교는 본래의 기독교를 무력화했다

제2판 서문에서 포이어바흐는 현대 기독교를 “비겁하고, 개성 없고, 안락함을 추구하며, 문학적이고, 교태를 부리며, 향락적인 기독교”라고 공격한다. 현대 기독교가 가진 것은 과거의 기독교에서 얻어 온 유산뿐이며, 스스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빈곤의 증명서들”(Testimonia paupertatis)밖에 없다고 말한다. 제2판 서문 본문

이 점이 키르케고르가 말한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에 대한 간접적 기여”와 직접 연결된다. 포이어바흐는 기독교를 부정하지만, 적어도 기독교의 날카롭고 불편한 요구를 무해한 교양이나 상식적 도덕으로 희석하지 않는다.

신앙과 사랑 사이에는 모순이 있다

후반부에서 포이어바흐는 신앙(Glaube)은 하나님과 인간, 신자와 불신자를 분리하지만, 사랑(Liebe)은 하나님과 인간 및 인간과 인간을 결합한다고 주장한다. 신앙이 특수하고 배타적인 반면, 사랑은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리적 신앙에 구속된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신앙과 사랑의 모순」

성례전의 모순

세례와 성찬 같은 성례전(Sakramente)은 물·빵·포도주라는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요소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그것에 초자연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포이어바흐는 여기서 기독교가 물질을 부정하면서도 실제로는 물질에 의존하는 모순을 본다.

기독교는 인간의 자기소외이다

인간이 자신의 가장 좋은 속성을 하나님께 돌릴수록 인간 자신은 가난하고 죄 많으며 무력한 존재가 된다. 포이어바흐에게 종교란 인간이 자기 본질을 낯선 신적 존재에게 양도하는 자기소외(Selbstentfremdung)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종교비판은 하나님에게 투사된 인간의 본질을 인간에게 되돌려 주는 작업이다.

키르케고르가 이 부분을 인용한 의도는 포이어바흐의 결론에 동의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의 비판이 당시의 온건하고 무의미해진 기독교를 폭로한다는 점을 인정하기 위해서다. 포이어바흐는 기독교의 적이지만 일관된 적이다. 그 때문에 기독교를 흐릿하게 옹호하는 신학자들보다 오히려 기독교의 본래적 요구를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서 번역한 “실족한 개별자로서의 포이어바흐”는, 포이어바흐가 기독교의 요구 앞에서 거리낌 또는 실족(Forargelse)을 경험하고 그것을 거부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키르케고르의 관점에서 문제는 그처럼 정직하게 거부하는 사람보다, 기독교를 아무런 거리낌도 일으키지 않는 온순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바꾸어 놓은 당대의 신학과 교회에 있다.

Categories: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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