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36, IIA136
이 책 10-11쪽을 참조하라.
유머(Humor)는 가장 높은 진동(Vibration)에까지 관철된 아이러니(Ironie)이다. 비록 그리스도교적인 것(Christelige)이 본래의 제일 원동력(primus motor)1이라고 하더라도, 그리스도교적 유럽(christeligt Europa) 안에는 여전히 아이러니(Ironie) 이상은 묘사하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또한 절대적으로 고립되고(absolut-isolerede), 인격적으로 홀로 서 있는(personlig-ene-bestaaende) 유머(Humor)를 끝까지 실현하지도 못한다. 그 결과 그들은 두 방향 가운데 하나를 택한다.
첫째는 교회(Kirken) 안에서 안식을 찾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개인들(Individer)의 모든 공동체적 결속(Sammenhold)이 세계를 향한 하나의 유머(Humor) 속에서 그리스도교적 아이러니(christelig Ironie)를 전개한다. 티크(Tieck)2 등이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둘째는 종교적인 것(Det Religieuse)이 움직이지 않는 곳에서는 하나의 클럽(Klub)을 형성하는 것이다(『세라피온 형제들(Serapions Brüder)』3. 다만 호프만(Hoffmann)4에게 이것은 물질적으로 실제 존재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의 이상적(ideelt) 공동체였다).
그러나 아니다. 하만(Hamann)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그리고 가장 진정한 유머리스트(Humorist)이다. 그는 황량한 섬이 아니라 삶의 소음(Livets Larm) 한가운데 살아가는 참된 유머적 로빈슨 크루소(Robinson Krusoe)5이다. 그의 유머(Humor)는 하나의 미학적 개념(æsthetisk Begreb)이 아니라 삶(Liv)이며, 잘 통제된 드라마의 한 영웅(Helt)이 아니다.
[a] IIA137
“비로소 자의(Willkür)는 범죄적인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것은 오히려 최고의 명랑함(Heiterkeit)과 복됨(Seligkeit)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머(Humor)에서 그러하다.”— 로젠크란츠(Rosenkrantz), 『백과사전(Encyclopädie)』, p.73.6
1837년 8월 4일.
번역 주석
이 단락은 키르케고르가 아이러니(Ironie)와 유머(Humor)를 질적으로 구별하는 중요한 초기 메모입니다.
- Ironie는 부정(否定)에 머물지만,
- Humor는 그 부정을 끝까지 밀고 나간 이후, 종교적인 것(Det Religieuse)에 의해 내적으로 떠받쳐지는 삶(Liv)의 형식입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Humoren er den til sin største Vibration gjennemførte Ironie.”
이는 단순히 “유머는 극단적인 아이러니”라는 뜻이 아니라,
“유머(Humor)는 가장 높은 긴장(Vibration)에까지 밀고 나간 아이러니(Ironie)이며, 그 긴장을 종교적인 것(Det Religieuse)이 내적으로 떠받칠 때 비로소 성립한다.”
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티크(Tieck)나 호프만(Hoffmann)은 여전히 공동체나 문학적 형식 안에서 유머를 찾았다고 평가하지만, 하만(Hamann)은 삶 자체(Liv)가 유머였던 인물로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훗날 『비학문적 후서』에서 발전하는 유머(Humor) → 종교성(Religiøsitet) → 그리스도교(Christendom)의 변증법을 예고하는 매우 중요한 메모입니다.
이 일기는 키르케고르가 훗날 『아이러니의 개념』(1841), 『비학문적 후서』(1846), 그리고 『인생길의 단계』(1845)에서 전개할 사상의 원형을 보여 줍니다. 특히 여기에서는 아이러니(Ironie)와 유머(Humor)를 단순히 두 문학적 기법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의 질적 단계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일기의 핵심은 다음 다섯 가지입니다.
1. 아이러니(Ironie)는 부정이고, 유머(Humor)는 부정을 끝까지 밀고 간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Humoren er den til sin største Vibration gjennemførte Ironie.”
“유머는 가장 높은 진동(Vibration)에까지 관철된 아이러니이다.” 여기서 Vibration은 단순히 “강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부정이 가장 극한까지 긴장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세상을 의심한다.
↓
자기를 의심한다.
↓
자기의 존재 자체를 의심한다.
↓
그 부정을 끝까지 견딘다.
이것이 아이러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부정을 끝까지 견디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 이 바로 유머입니다.
2. 따라서 유머는 아이러니를 폐기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러니→유머
를 마치
A가 끝나고
B가 시작된다.
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Humor = gennemført Ironie라고 합니다. 즉 유머는 아이러니가 완성된 형태입니다.
아이러니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러니가 종교 안에서새롭게 살아나는 것입니다.
3. 그런데 그 원동력은 그리스도교이다.
가장 중요한 문장이 바로 이것입니다.
det Christelige er den egentlige primus motor
즉 그리스도교적인 것(Det Christelige)이 진정한 원동력이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키르케고르는 유머가 철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에서 나온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즉
철학→ 아이러니
가 아니라
그리스도교
↓
아이러니를 끝까지 밀어감
↓
유머
입니다. 그래서 그는 유머를 종교 이전의 미학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종교가 만들어내는 삶의 형식으로 봅니다.
4. 왜 하만(Hamann)을 최고의 유머리스트라고 하는가?
여기서 갑자기 하만이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키르케고르는 티크(Tieck), 호프만(Hoffmann)같은 사람들은 문학 속에서 아이러니를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만은 삶 자체가 유머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유머는 미학적 개념(æsthetisk Begreb)이 아니라 삶(Liv)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키르케고르는 유머를 문체(style)가 아니라 존재 방식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5. 왜 “삶의 소음 속의 로빈슨 크루소”인가?
이 표현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보통 로빈슨 크루소는 섬에서 혼자 삽니다. 그러나 하만은 도시에서, 사람들 가운데, 삶의 소음(Livets Larm) 속에서 혼자 하나님 앞에 삽니다. 즉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으로부터 규정되지 않는다.
이것이 유머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보는 부분은 이것입니다.
이 일기는 후기에 등장하는“유머는 종교성의 최후의 경계이다.”라는 사상을 이미 담고 있습니다. 이를 단계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학(Aesthetic)
↓
아이러니(Ironie)
↓
유머(Humor)
↓
종교성 A
(내면성)
↓
종교성 B
(그리스도교)
↓
동시대성(Samtidighed)
즉, 아이러니는 모든 것을 부정하지만, 유머는 그 부정을 하나님 앞에서 견디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나 아직도 유머는 십자가의 역설 앞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비학문적 후서』에서 키르케고르는 유머를 종교성의 문턱으로 규정합니다.
동시대성(Samtidighed)과 연결하면, 이 일기는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 아이러니(Ironie)는 세상과 자신을 부정하는 단계입니다.
- 유머(Humor)는 그 부정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내는 단계입니다.
- 그러나 동시대성(Samtidighed)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와 실제로 함께 존재하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유머는 아직 그리스도와의 만남 자체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높은 인간적 준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DD 일기는 후기 키르케고르의 종교철학 전체를 미리 예고하는 매우 중요한 초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낭만주의와 공동체 관련하여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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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 primus motor : 라틴어로 ‘제일 원동자’ 또는 ‘최초의 운동자’를 뜻하며, 모든 운동(bevægelse)을 일으키는 최초의 원인, 곧 운동의 근거(grund til bevægelsen)를 의미한다.
여기서 primus motor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primum movens immobile)’를 연상시키는 표현입니다. 다만 키르케고르는 이 메모에서 이를 철학적 존재론의 의미로 사용하기보다, “그리스도교적인 것(Det Christelige)이 유머(Humor)를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 동력”이라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그리스도교적인 것이 본래의 제일 원동력(primus motor)이다.”라는 번역은 이러한 맥락을 잘 반영합니다. ↩︎ - 티크(Tieck) : 요한 루트비히 티크(Johann Ludwig Tieck, 1773–1853)는 독일의 작가, 번역가, 편집자이다. 그는 특히 중세 전설(middelalderlige legender)을 낭만주의적으로 다시 창작한 작품들과, 허구적 환상(fiktive illusioner)을 아이러니하게 활용한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당시의 속물적 시민성(spidsborgerlighed)을 간접적으로 풍자했는데, 이러한 특징은 특히 일련의 풍자적 독서극(satiriske læsedramaer)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
- 『세라피온 형제들(Die Serapions-Brüder. Gesammelte Erzählungen und Mährchen)』은 E. T. A. 호프만(E.T.A. Hoffmann)이 1819년부터 1821년까지 출간한 4권짜리 소설집(novellesamling)이다. 이 작품은 후에 『E.T.A. 호프만 선집(E.T.A. Hoffmann’s ausgewählte Schriften)』 제1~4권(베를린, 1827–1828)에 수록되었다. 이야기들은 테오도어(Theodor), 오트마르(Ottmar), 질베스터(Sylvester), 빈첸츠(Vincenz)로 이루어진 작은 모임, 곧 네 명의 세라피온 형제들(Serapionsbrødre)이 서로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참고
이 주석은 본문의 다음 구절을 설명해 줍니다.
”…종교적인 것(Det Religieuse)이 움직이지 않는 곳에서는 하나의 클럽(Klub)을 형성하는 것이다(Serapions Brüder).”
키르케고르는 여기서 『세라피온 형제들』을 실제 공동체라기보다 문학적·이상적 공동체(ideelt fællesskab)의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어서“그러나 호프만(Hoffmann)에게 이것은 물질적으로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상적(ideelt)인 것이었다.”고 덧붙이는 것입니다. 즉, 그는 교회(Kirken)와 같은 실제적인 종교 공동체와 대비하여, 문학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상적 모임을 예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 호프만(Hoffmann) : 에른스트 테오도어 아마데우스 호프만(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 1776–1822)은 독일의 법률가(jurist), 작가(forfatter), 작곡가(komponist), 그리고 음악철학자(musikfilosof)이다. 그는 특히 환상적·동화적인 내용(eventyragtigt indhold)을 담은 단편소설(noveller)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프리드리히 드 라 모트 푸케(Friedrich de la Motte Fouqué)의 대본에 곡을 붙인 오페라 『운디네(Undine)』를 작곡했으며, 이 작품은 1816년에 초연되었다. ↩︎
- 로빈슨 크루소(Robinson Krusoe) : 영국의 작가 대니얼 디포(Daniel Defoe)가 1719년에 발표한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기이하고 놀라운 모험(Life and Strange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의 주인공이다. 로빈슨은 난파선 사고를 당한 뒤 무인도(øde ø)에 표류하게 되며, 오랜 세월 홀로 살아간다. 이후 식인종(kannibaler)에게 붙잡힌 원주민(indfødt) 한 사람을 구출하고, 그를 그리스도교(Christendom)로 개종시킨 뒤 프라이데이(Fredag)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 이 소설은 여러 유럽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덴마크어로는 1744–1745년과 1826년에 번역·출간되었다. 1826년 번역본은 루드비그 크루세(L. Kruse)가 옮긴 『로빈슨 크루소의 놀라운 사건들(Robinson Crusoe’s mærkværdige Begivenheder)』(코펜하겐, 1826)이다.
참고
이 주석은 본문의 다음 표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을 제공합니다.
“하만(Hamann)은 참된 유머적 로빈슨 크루소(Robinson Krusoe)이다. 다만 그는 무인도(øde Øe)가 아니라 삶의 소음(Livets Larm) 한가운데 있다.”
키르케고르는 여기서 로빈슨 크루소를 단순한 고독한 인물이 아니라, 세상과 분리된 내면적 독립성의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하만은 실제로 세상을 떠난 은둔자가 아니라, 삶의 소음과 혼란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내적으로 하나님 앞에 홀로 선 단독자(Den Enkelte)였다는 점에서 “참된 유머적 로빈슨 크루소”라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는 키르케고르가 이해하는 유머(Humor)가 단순한 문학적 기법이 아니라 실존(Liv)의 방식임을 보여 주는 중요한 비유입니다. ↩︎ - Rosenkrantz Encyclopedie p. 73 : K. 로젠크란츠(K. Rosenkranz)의 『신학 학문의 백과사전(Encyklopädie der theologischen Wissenschaften)』(213,2) 73쪽의 내용이다.
“그러나 행복(Glückseligkeit)은 인간을 개별적인 것(Einzelne)과 유한한 것(Endliche)으로 향하게 하고 그것과 결합시키기 때문에, 어느새 의지의 자유(Freiheit des Willens)는 개별적인 것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 이렇게 해서 자의(Willkür)가 생겨난다. 자의는 자유(Freiheit)의 한 계기(Moment)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우연성(Zufälligkeit)과 무가치함(Nichtigkeit)을 하나님의 법(das göttliche Gesetz)에 맞서 의식적으로 고착시킬 때, 그로부터 악(Böse)이 발생한다. 비로소 이때 자의(Willkür)는 범죄적인 것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자의는 오히려 최고의 명랑함(Heiterkeit)과 복됨(Glückseligkeit)의 원리이다. 예를 들어 유머(Humor)에서 그러하다.”
여기에서 로젠크란츠는 칸트(Kant)의 입장에 따라 의지(Wille)와 자의(Willkür)를 구별한다. 의지(Wille)는 순수이성(reine Vernunft)이 보편적 규칙(almene regler)에 따라 행위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반면, 자의(Willkür)는 이성(Vernunft) 또는 감정(Følelser)에 의해 규정되는 의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칸트는 이성에 의해 규정되는 자의(Willkür)를 ‘자유로운 자의(freie Willkür)’라고 규정하였다.
번역 주석
이 주석은 키르케고르가 Willkür를 단순히 ‘자의’나 ‘제멋대로 함’ 정도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칸트적 개념 구분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Wille : 이성이 지향하는 보편적이고 도덕적인 의지
Willkür : 선택하고 결정하는 의지 작용, 즉 선택의 자유를 행사하는 능력
칸트에게 Willkür 자체는 반드시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성(Vernunft)에 의해 인도될 때는 자유로운 자의(freie Willkür)가 됩니다. 그러나 욕망이나 개별적인 것(Einzelne)에 사로잡혀 자신의 우연적 욕구를 절대화할 때 비로소 범죄적인 자의(verbrecherische Willkür)가 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로젠크란츠가 말하는
“유머(Humor)에서는 자의(Willkür)가 최고의 명랑함과 복됨의 원리이다.”라는 문장은, 유머가 이성에 의해 자유롭게 통제되는 자발성을 보여 준다는 의미입니다. 키르케고르가 이 문장을 발췌한 것은, 그가 이해하는 유머(Humor)가 단순한 농담이나 기분이 아니라 자유로운 내면성의 실존적 표현이라는 점과도 연결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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