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클리마쿠스 혹은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작품 해설
(Johannes Climacus, eller De omnibus dubitandum est)
1. 키르케고르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
《요하네스 클리마쿠스 혹은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De omnibus dubitandum est)는 키르케고르가 1842–1843년경 집필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채 남긴 철학적 작품이다. 이 글은 그의 사후에 유고로 출판되었다.
이 작품의 화자는 요하네스 클리마쿠스(Johannes Climacus)라는 가명 인물이다. 클리마쿠스는 이후 《철학의 부스러기》(Philosophiske Smuler)와 《결론의 비학문적 후서》(Afsluttende uvidenskabelig Efterskrift)의 저자로 등장하는 인물로, 키르케고르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적 목소리를 대표한다.
따라서 이 미완성 작품은 이후 전개되는 키르케고르 철학의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준비하는 사상적 실험이라 할 수 있다.
2. 제목의 의미: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이 작품의 라틴어 부제 De omnibus dubitandum est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표현은 근대 철학의 출발점으로 알려진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떠올리게 한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함으로써 확실한 지식을 찾으려 했고, 결국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바로 이 철학적 방법을 문제 삼는다. 그는 묻는다.
왜 철학은 의심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이 질문이 바로 이 작품 전체를 이끄는 중심 문제이다.
3. 철학은 왜 의심에서 시작하는가
작품 속의 클리마쿠스는 당시 철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던 세 가지 명제를 검토한다.
- 철학은 의심에서 시작한다
- 철학하려면 의심해야 한다
- 근대 철학은 의심에서 시작한다
이 명제들은 데카르트 이후의 철학에서 거의 자명한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클리마쿠스는 이 명제들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하기 시작한다. 그는 묻는다.
- 왜 철학은 의심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 이전 철학은 무엇에서 시작했는가?
- 의심은 정말 철학의 필수 조건인가?
이 질문들은 당시 지배적인 철학 전통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질문이었다.
4. 헤겔 철학에 대한 비판
이 작품의 또 다른 중요한 대상은 헤겔 철학이다. 헤겔은 현실 전체를 하나의 철학 체계 속에서 이해하려 했다. 그의 철학은
- 정립
- 반정립
- 종합
이라는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모든 현실을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체계 철학을 근본적으로 의심한다. 그는 묻는다.
체계 안에 있는 철학자가 어떻게 전체 체계를 만들 수 있는가?
철학자는 역사 속에 존재하는 한 개인일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역사 전체를 설명하는 체계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이 질문은 키르케고르가 평생 제기한 사변 철학에 대한 비판의 출발점이다.
5. 회의주의의 자기 모순
키르케고르는 또한 회의주의 자체의 모순을 지적한다. 회의주의자는 모든 것을 의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모순이 있다. 만약 모든 것을 의심한다면, 의심 자체도 의심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회의주의자는 의심의 방법 자체는 의심하지 않는다. 즉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명제를 절대적인 전제로 받아들인다. 이 점에서 회의주의는 이미 하나의 절대적 가정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키르케고르는 의심이 철학의 절대적 출발점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6. 의심과 인간 실존
키르케고르가 특히 중요하게 보는 문제는 의심과 인간의 삶 사이의 관계이다. 회의주의는 철학적 사유에서는 가능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유지될 수 없다. 인간은 삶 속에서 계속 행동하고 선택해야 한다. 키르케고르는 묻는다.
만약 모든 것을 의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지식에 대해서는 의심하면서도 삶에서는 계속 행동한다. 이것은 하나의 모순이다. 키르케고르는 여기서 중요한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은 항상 세계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님 앞에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단순한 인식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책임의 문제이다.
7. 의식과 모순
이 작품의 후반부에서 키르케고르는 의식의 구조를 분석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명제를 제시한다.
“직접성은 현실이며, 언어는 관념성이다.”
즉 현실 자체는 직접적인 것이지만, 우리가 현실을 말로 표현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관념적인 것이 된다. 이때 의식 속에서 하나의 모순이 발생한다. 현실과 언어 사이의 긴장이 바로 의식의 모순적 구조를 만든다. 키르케고르는 이 모순을 인간 의식의 근본 구조로 이해한다.
8. 의심을 넘어 신앙으로
이 작품은 완성되지 못한 채 끝난다. 그러나 키르케고르의 일기에는 이 작품의 결론을 암시하는 문장이 남아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의심은 체계에 의해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의해 극복된다.”
이 말은 키르케고르 철학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철학 체계는 의심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신앙은 인간을 하나님 앞에 세움으로써 의심을 넘어서는 길을 열어 준다. 이 점에서 키르케고르는 철학을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실존과 신앙의 문제로 이해한다.
정리
《요하네스 클리마쿠스 혹은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헤겔의 체계 철학을 비판하며 철학의 출발점을 다시 질문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키르케고르는 의심이 철학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을 거부하고, 인간 존재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실존적 철학의 방향을 제시한다. 비록 미완성 작품이지만, 이 글은 이후 《철학의 부스러기》와 《결론 없는 비학문적 후서》로 이어지는 키르케고르 철학의 중요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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