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르케고르와 Puritas Cordis의 현재성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은 인간에게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어떤 과업을 살아내야 하는가. 지식은 더 이상 희소하지 않고, 노동은 점점 자동화되며, 효율과 생산성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직업의 가치, 노동의 의미, 심지어 인간의 유용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이 흔들림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질문을 더 본질적인 차원으로 되돌려 놓는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이미 19세기에 이 질문을 가장 급진적인 형태로 제기했다. 그는 묻는다. “너의 과업(Gjerning, 직업)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 질문은 결코 직업 상담이 아니다. 왕이냐 노동자냐,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돈을 얼마나 버느냐는 모두 부차적이다. 그의 질문은 오직 하나의 기준을 갖는다. 그 과업을 너는 영원의 책임(Evighedens Ansvar) 앞에서 감당할 수 있는가?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Puritas Cordis, 곧 ‘마음의 청결’이다. 이는 도덕적 무결함이나 감정의 순수성을 뜻하지 않는다.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마음의 청결이란 “한 가지만을 의지적으로 원하는 상태”, 곧 at ville Eet이다. 그리고 그 하나는 성공도, 행복도, 자기실현도 아닌 진리 안에서의 선(det Gode i Sandhed)이다.

여기서 결정적인 역설이 등장한다. 우리는 흔히 목적이 중요하고 수단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칸트의 도덕철학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에서도, 공리주의의 결과 중심 사고에서도 반복된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이 구도를 근본적으로 전복한다. 영원(Evighed)의 관점에서 보면, 수단(Middel)과 목적(Maal)은 분리되지 않는다.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이미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영원히 이해하면, 수단은 하나이고 목적도 하나이며, 수단과 목적은 동일하다.”

이 점에서 Puritas Cordis는 단순한 윤리적 요청이 아니라 존재론적 요청이다. 마음이 분열된 사람, 곧 하나의 목적을 말하면서 다른 수단을 사용하는 사람은 이미 자기 자신과 어긋나 있다. 그는 겉으로는 선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을 원하고 있다. 이 분열이 바로 부끄러움의 근원이다. 여기서 부끄러움은 심리적 수치심이 아니라, 존재의 불일치다.

이제 이 사유를 AI 시대로 가져와 보자. 오늘날 많은 일들은 AI가 더 잘,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과업은 무엇으로 남는가? 키르케고르의 관점에서 보면, 이 질문은 이미 잘못 설정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AI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이 일을 하는 내가 어떤 존재로 서 있는가”이다. AI는 결과를 낼 수 있지만, 책임을 질 수는 없다. AI는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자기 삶을 영원의 책임 앞에서 해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키르케고르적 의미에서 ‘부끄럽지 않은 과업’이란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크든 작든, 대체 가능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내가 그 과업을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미래의 세대 앞에서도,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삶의 형식이다. 군중(Mængden)의 박수나 데이터의 평가가 사라져도 지속될 수 있는 과업,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나를 진리 안에 머물게 하는 과업, 바로 그것이다.

이때 흥미로운 역설이 드러난다. AI 시대에는 오히려 하찮아 보이는 일, 비가시적인 일,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 일이 더 급진적인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런 과업일수록 군중의 승인 없이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업은 나를 기능적 인간이 아니라, 한 사람(Enkelt) 으로 드러낸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것처럼, 영원은 결코 군중을 상대하지 않는다. 영원은 언제나 단독자를 상대한다.

결국 AI 시대의 질문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영성의 문제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Puritas Cordis는 여전히 유효하다. 마음의 청결이란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명령이자 가장 어려운 요구다. 오직 하나를 원하라. 그리고 그 하나를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라. 수단과 목적이 어긋나지 않는 삶, 기능이 아니라 책임으로 정의되는 과업, 바로 그 자리에서 인간은 AI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으로 남는다.

카테고리: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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