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청결⟫, 282-3쪽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수단 = 목적”의 역설은 Puritas Cordis(마음의 청결)의 도덕적 장식이 아니라, 존재론적 핵심입니다. 키르케고르는 이것으로 마음의 청결의도·동기·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단일성 제로 재정의합니다.

1️⃣  Puritas Cordis의 정의부터 바뀝니다

키르케고르의 유명한 정의를 기억해 봅시다.

Puritas Cordis est velle unum

마음의 청결이란 한 가지만을 원함(at ville Eet)이다.

여기서 “한 가지”는 어떤 목표 하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의지의 분열이 없는 상태, 즉 이중성(Tvesindethed)의 부재입니다.

👉 문제는 “무엇을 얻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원하느냐”입니다.


2️⃣ 왜 ‘목적이 더 중요하다’는 사고가 마음을 더럽히는가

세속적·시간적 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 목적(Maalet)이 중요하다
  • 수단(Midlet)은 부차적이다
  • 좋은 목적이면 어느 정도의 수단은 눈감아도 된다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이것을 영적 오염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 순간:

  • 의지는 목적과 수단으로 분열되고
  •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가 분열되며
  • 진리와 성공이 분열되기 때문입니다

👉 이것이 바로 이중성(Tvesindethed)입니다.


3️⃣ “수단 = 목적”은 도덕 규칙이 아니라 존재 규칙이다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영원(Evigheden)의 관점에서 수단과 목적은 하나”라는 말은,

  • 윤리 규칙을 강화하자는 말도 아니고
  • 결과주의를 반대하자는 말도 아닙니다.

존재는 과정에서 이미 완성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즉,

  • 선한 목적에 도달하면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
  • 선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순간 이미 목적에 있다

👉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진리 안에서 선한 그 수단을 사용한다면, 그는 영원의 관점에서 이미 목적에 도달했다.


4️⃣ 이것이 Puritas Cordis의 핵심인 이유

🔹 마음이 더럽혀지는 순간

  • 지금은 거짓을 써도 괜찮다
  • 지금은 이기적이어도 된다
  • 나중에 선을 이루면 된다

이 순간, 마음은 둘로 갈라집니다.

  • 지금의 나 vs 나중의 나
  • 수단의 나 vs 목적의 나

👉 이것이 impuritas cordis (마음의 불순함)입니다.


🔹 마음이 청결한 상태

  • 지금 사용하는 수단이
  • 내가 원하는 목적과 완전히 동일
  • 지금의 내가 이미 내가 원하는 존재

👉 이때 마음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Puritas Cordis는:

  • 동기의 순수성도 아니고
  • 감정의 순수성도 아닙니다.

즉,

의지의 단일성입니다.


5️⃣ 왜 이것이 ‘역설’인가

왜냐하면 세상은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 아직 목적에 도달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미 목적에 있는가?
  • 결과가 없는데 어떻게 성공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단호합니다.

영원은 결과로 판단하지 않는다.

영원은 존재의 방식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역설이 됩니다.

  • 시간 안에서는 미완성
  • 영원 안에서는 완성

6️⃣ 그리스도론적으로 보면

이 역설은 그리스도에게서 완전히 구현됩니다.

  • 예수는 성공하지 않았다 (십자가)
  • 그러나 수단과 목적이 완전히 하나
  • 그래서 그 존재 자체가 구원

👉 Puritas Cordis는 그리스도를 모방(imitation)하는 형식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실존적 응답입니다.


7️⃣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수단 = 목적”이라는 역설은, 마음의 청결이란 미래의 성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존재 방식 안에서 이미 영원과 일치해 사는 의지의 단일성임을 드러낸다.

그래서 Puritas Cordis의 질문은 언제나 이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그 수단이,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로 그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만 마음은 하나가 되거나, 둘로 갈라집니다.

카테고리: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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